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문어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photo Pexels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문어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photo Pexels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바다 온도 상승이 문어의 시력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높은 바다 온도로 인해 문어의 시력이 떨어지면서 생존 위협까지 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 3월 전 세계 해수면 온도는 평균 21.07도로 역대 3월 기준 최고였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난 생물로 유명한 문어마저 온도에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어 뇌 70%가 시각과 연결돼 

문어(文漁·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 문어의 지능은 상당히 높다. 문어 뇌의 크기는 인간의 600분의1에 불과하지만 지능은 강아지와 같은 수준이다. 생물학자들이 문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문어 유전자 수가 인간과 비슷하고, 빠른 적응력과 습득력에 관련된 유전자도 인간과 유사했다. 심지어 단백질 코딩 유전자는 3만3000개로 인간(2만5000개)보다 더 많았다. 동물학자들은 척추동물의 ‘지휘자’가 인간이라면, 온몸이 흐물흐물한 무척추동물의 지휘자는 문어일 것이라고 말한다.

문어는 눈의 시력 또한 카메라처럼 정확하다. 문어 눈의 구조도 인간과 놀랄 만큼 비슷하지만 시신경과 연결되는 방법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망막에 사물의 상이 맺히기 때문인데, 인간은 망막 앞에 시신경이 퍼져 있다. 그런 탓에 시신경이 뇌에 빛 신호를 전달하려면 망막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이때 시신경이 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망막 한 부분에 구멍이 생겨 시각세포가 없는 맹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맹점으로 빛을 보내는 방향의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는 눈의 빠르게 떨리는 동작을 통해 생성한 여러 상을 뇌에서 합성해 시야가 가려지는 부분을 없게 하지만 말이다.

반면 문어의 시신경들은 망막의 뒷면에 연결되어 뒤쪽으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맹점이 생기지 않아 시야를 가릴 일이 없다. 과학자들은 문어의 눈 구조가 더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문어보다 열등하다거나 문어가 더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맹점의 존재가 개체의 생존이나 시력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문어는 연체동물 중 시력이 매우 좋은 데 반해 색맹이다. 하지만 온몸의 피부를 통해 빛과 색을 인지할 수 있다. 문어 피부에 광수용체, 즉 감광성(感光性) 망막 색소를 합성하는 단백질인 옵신(opsins)과 로돕신(rhodopsin)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로돕신은 눈의 망막에 있는 간상세포(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에 함유된 붉은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이다. 문어의 피부가 눈 역할도 하는 셈이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눈처럼 피부가 뚜렷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아니다. 빛의 증가와 변화를 뇌의 도움 없이 피부만으로 감지한다는 것이다. 피부의 빛 파동 감지력으로 구름 뒤에 가려진 해와 달을 인식해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또 자유자재로 몸 색깔을 바꿔 위장을 한다.

이처럼 문어의 시력은 생존에 필수 요소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잡고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시각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호주 애들레이드대 생명과학과 키아즈 후아(Qiaz Hua)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정보를 받아들이는 문어 뇌의 약 70%가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팀의 연구에서 지구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바다에 살고 있는 문어에게 시력 감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어의 시력 상실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문어가 먹이를 잡고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선 눈의 망막이 빛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데, 시력이 감퇴하면 의사소통은 물론 포식자와 먹이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문어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먹이를 못 구해 죽을 확률이 높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눈을 공격당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격력의 80% 이상을 상실한다고 한다. 누구와 싸우려면 일단 보여야 하지 않을까.

연구팀은 지구온난화가 바다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변화 적응력이 뛰어난 문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새끼를 밴 어미 문어와 부화 직전 상태의 문어 알을 세 부류로 나눠 19℃, 22℃, 25℃의 각기 다른 온도 조건에 노출시켰다. 22℃는 현재의 바다 온도이고 25℃는 2100년에 예상되는 바다 온도다. 그 결과 온도가 높을수록 시각과 관련 있는 단백질이 적게 생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에 놓인 문어 알, 부화율도 낮아

먼저 19℃와 22℃를 비교했을 때, 시력을 담당하는 단백질 생성량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19℃와 25℃, 22℃와 25℃를 비교했을 때는 단백질 생성량이 각각 최대 18배, 14배나 차이가 났다. 특히 25℃에 노출된 문어의 경우 시력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단백질이 눈에 띄게 적었다는 게 후아 교수의 설명이다. 하나는 수정체의 투명도와 광학적 선명도를 담당하는 단백질이고, 다른 하나는 망막 광수용체의 시각 색소를 재생하는 단백질이다.

또 바다 온도가 높을수록 새끼를 밴 어미 문어의 조기 사망률도 높았다. 25℃에서 사육된 문어 3종 중 2종에서는 알이 부화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높은 해수 온도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어미 문어가 새끼도 낳기 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25℃ 환경에 놓인 어미 문어는 낮은 온도에 노출된 어미 문어에게서 관찰되지 않는 강한 열 스트레스를 보였다. 차갑든 따뜻하든 어떤 조건에도 적응했던 문어도 높은 바다 온도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한 종의 알에서 부화한 새끼 문어들도 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며 성체로 자라나지 못했다. 연구팀은 다 크지 못한 새끼들이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수산자원의 고갈을 초래하고, 나아가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등 경제적·생태학적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글로벌 생물학 변화’ 4월호에 게재되었다.

문어는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해 ‘바다의 잡초’라고 불린다. 그런 문어가 바다 온도의 상승으로 시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 열 스트레스로 생존 기간마저 짧아졌다. 만약 현재와 같은 바다 온도 상승이 계속 진행된다면 아무리 고도의 적응력을 가진 문어일지라도 미래의 극한 해양 변화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고 후아 교수는 말한다.

단, 이번 실험에서 문어들은 향후 수십 년간 일어날 온도 변화를 급속도로 접했기 때문에 21세기 말의 지구온난화에 따른 결과가 그대로 재현된 건 아니다. 하지만 바다의 온도 상승이 문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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