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간사(오른쪽 셋째)와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R&D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천막농성 돌입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간사(오른쪽 셋째)와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R&D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천막농성 돌입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린 22대 총선의 뒷맛이 개운치 않다.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 가장 높은 67.0%의 투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유권자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러나 승자가 독식하는 ‘소선거구제의 함정’은 여전했다. 고작 5.4% 더 많은 득표율을 기록한 야당이 무려 71석이나 더 많은 지역구(161석)를 차지해 버렸다. 기형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렇다고 국회가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독단·독선·불통의 행정부를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정부가 실추시킨 과학자·의사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회에서 사라져가는 ‘과학기술’ 

새 국회에서도 과학기술은 찾아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과학계 국회의원이라고 해봤자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대전 유성을에서 압승한 천문연구원의 황정아 당선인과 계명대 식품가공학과 교수·대구경북과기원(DGIST) 원장을 지낸 대구 수성을의 이인선 의원이 고작이다. 황 당선인은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한 누리호 개발의 성공 주역이고, 영남대 식품영양학과를 마친 이 의원은 경북 부지사를 역임했다.

탈북자 출신의 박충권 현대제철 책임연구원과 최수진 한국공학대 특임교수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박충권 당선인은 김정은종합대 화학재료공학과 출신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연구를 하다가 탈북해 서울대 재료공학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 화학과를 졸업한 최수진 당선인은 대웅제약·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산업통상자원부를 거친 보건의료 빅데이터 전문가다.

의사의 약진이 그나마 위안이다. 무려 8명이나 된다. 성남 분당갑의 안철수 의원, 서울 강남갑의 서명옥 당선인이 있고, 인요한·한지아 당선인이 비례대표다. 경기 오산의 차지호 당선인, 비례대표인 김윤 당선인, 이주영 당선인, 김선민 당선인도 의사 출신이다. 특히 김윤·김선민 당선인은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김용익 교수의 직계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 출신으로 변호사와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전현희 서울 중·성동구 당선인이 3선 의원이 된다. 간호사 출신으로는 재선이 되는 이수진 의원(성남시 중원구)이 유일하다. 약사 출신으로도 부천 정의 서영석 의원이 유일하다.

과학기술 시대인 21세기의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에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이 5%뿐이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다. 의사·약사·간호사를 모두 합쳐도 그렇다.

  

신뢰하기 어려운 ‘역대 최고 수준’ 예산 

과학기술계 출신 4명과 의약학계 출신 11명의 국회의원이 제22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학기술 과제는 넘쳐난다. 현실적으로는 아무 명분도 없이 법에 정해진 절차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삭감했던 4조6000억원의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행히 이 문제에 대해 황정아 당선인이 강력한 의지를 피력해 왔다. 특히 추경을 통해 정부가 작년에 삭감했던 국가연구개발 예산에 긴급 수혈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 황 당선인의 최우선 공약이다.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국가 예산 목표제’를 법제화하고, 지원을 하되 간섭하지 않는 ‘한국형 하르나크 원칙’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황 당선인이 떠안기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과제다.

총선 직전인 지난 4월 4일 대통령실이 내년도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정부가 작년에 기록한 재정적자가 무려 87조원이나 된다. 적자 폭이 2022년보다 30조원이 줄었지만, 지난해 예산 편성 당시의 예상보다 무려 29조원이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GDP(국내총생산)의 3.9%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지난해 경기 불황에 따른 역대급 세수 감소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국가채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년 사이에 60조원이 늘어나서 역대 최대치인 1127조원에 도달했다. 국민 1인당 빚이 무려 2179만원이나 된다. 지난해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2019년까지 30%대를 기록하던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 40%대를 넘어섰고, 결국 작년에는 50.4%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도 전망이 밝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작년에 새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으로 상황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미국의 ‘보호주의’와 미·중의 이념 갈등으로 촉발된 ‘반도체 전쟁’의 상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를 앞세운 탄소중립도 우리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망국적인 탈원전과 무분별한 신재생 확대를 바로잡는 일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과연 감당하기 어려운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 적자의 늪에 빠져버린 정부가 당장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낮은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액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대통령실이 강조하는 과기부 혁신본부와 경제부처의 ‘공감대’를 무작정 믿기는 어렵다. 특히 대통령실의 갑작스러운 발표가 총선을 노린 꼼수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총선을 의식해서 전년도 적자 규모를 4월 10일 이전에 발표하던 관행을 무시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과학기술의 도약을 위한 예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중한 국가연구개발비를 나눠먹고, 갈라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떼도둑)로 매도당한 과학자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속절없이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다. 도대체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집행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예산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국회가 밝혀내줘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는 ‘특검’이라도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명예’를 먹고사는 과학자에게 ‘떼도둑’이라는 누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연말 이후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기에 이번에는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액하겠다는 것인지도 속시원하게 밝혀내야 한다. 정부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과학자들에게 분명한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정쩡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느닷없이 ‘악마적 범죄집단’으로 내몰린 의사들의 명예회복도 필요하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억지다. 자신들이 망쳐놓은 의료정책의 실패를 의사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의료개혁은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는 총선 이후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의 독단·독선·불통의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억지일 뿐이다. 의대 정원의 65%나 되는 2000명 증원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엉터리 개혁이다. 철저한 도제식 교육·수련이 필요한 의사 증원은 변호사 증원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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