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9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이 기정사실화됐다. 한 전 위원장 측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대산빌딩에 전당대회 선거 캠프를 위한 사무실을 계약했다고 밝히면서다. 이날 찾은 사무실은 이사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전 위원장 측 관계자는 “캠프 구성과 최고위원 러닝메이트 준비를 끝낸 것이냐”는 질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원외에서 대표 도전을 하는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최고위원들이 반기를 들어 지도부가 해체되는 ‘제2의 이준석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편에 설 최고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한 전 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오는 6월 23일로 예정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지난 4월 한 전 위원장의 비대위원장직 사퇴 직후부터 그의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캠프를 꾸리고 최고위원 러닝메이트를 구하고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출마설이 나온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다. 이미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이 당내의 전반적 기류로 자리 잡았을 무렵이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5월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도서관에서 목격되면서 소위 ‘목격담 정치’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5월 말에는 ‘지구당 부활론’을 띄우며 사실상 당권 도전을 위한 포석을 까는 등 당권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어대한’ 누가 만들었나
“너무 한쪽으로만 쏠리는 분위기이다 보니 다른 후보들도 여러 명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지만, 아직은 다들 눈치만 보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6월 셋째 주에 만난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당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6월 24~25일 전당대회 후보자 등록일을 앞두고 당내에서 ‘어대한’ 기류가 강하게 형성된 데 대한 언급이다.
‘어대한’이 최초로 언론 보도에 언급된 것은 지난 1월 총선기간이다. 한 전 위원장이 대구를 방문해 대구시당과 경북도당 당원들에게 신년인사를 전하던 당시 한 지지자가 “지금이면 어대한(어차피 대통령은 한동훈)이라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 인터뷰가 언론 보도에 실린 것이 계기였다. 당시 한 전 위원장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어대한’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당 대표를 의미하는 ‘어대한’이 여권 내에 퍼진 것은 지난 5월 중순부터다. 한 전 위원장이 지난 5월 초 측근들에게 “전당대회에 나가면 내가 이긴다”고 언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한 위원장의 재등판이 점쳐졌고, 비슷한 시기 수도권 의원들과 비윤계를 중심으로 전대에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며 제기된 ‘당원 100%’ 룰 변경 논의에 힘이 실렸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는 듯이 보이는 오해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황우여 비대위원장에게 총선백서 발간 시기를 전당대회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OB(Old Boy)와 YB(Young Boy)가 양쪽에서 한 위원장의 길을 터준 셈이다.
대세가 한 전 위원장 쪽으로 기운 것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높은 지지율이 결정적이었다. 친한계 핵심으로 꼽히는 장동혁 의원은 지난 6월 19일 SBS라디오에서 “어대한은 누가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당원들의 마음과 민심이 모여진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지층은 지난 4월 11일 한 전 위원장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직후에도 지지를 이어갔다. 미디어토마토가 총선 패배 직후인 지난 4월 13일부터 14일까지 만 18세 이상 전국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 44.7%가 한 전 위원장을 차기 당 대표로 꼽았다.
尹·韓 ‘두 개의 태양’ 될까
총선 참패로 책임론에 휩싸인 용산은 전당대회에 입김을 불어넣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불화설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친윤(친윤석열)’과 ‘친한(친한동훈)’ 간 계파 분화 양상도 도드라진다. 한 전 위원장은 6월 둘째 주부터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도와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진 의원들은 주로 계파성이 모호하거나 이전에 그와 인연이 닿았던 이들이다. 한 전 위원장에게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들은 대부분 이를 수용한 분위기다. 친윤으로 꼽혔던 일부 의원들도 한 전 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발걸음을 돌릴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 신평 변호사는 지난 6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동훈 전 위원장이 당 대표가 되는 경우 윤석열 정부는 치명타를 받을 것으로 본다”며 “최근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지칭해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 이상의 비하 표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신 변호사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정부에 그야말로 악몽이 된다”며 “대선 욕심이 너무 강해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가 당대표가 돼 목표(대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정부에 타격을 줄 것이고, 본인의 야심까지도 갉아먹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한동훈 대표 체제’에선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 평론가는 “한 전 위원장의 당선은 70% 정도로 유력하다고 본다. 다만 이후의 국민의힘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권인데,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안고 갈 수는 없다.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수록 갈등은 커질 것이고, 그 경우 결국 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탈당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반면 당 대표가 된 한 전 위원장이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는 당정 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주류와 소통하고 있는 서정욱 변호사는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될 것”이라며 “관계가 틀어져버리면 대분열이 되어버리는데, 국민의 눈높이를 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 중간에서 절묘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친윤·친한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운명공동체인 부분도 있지 않느냐”며 “한동훈 특검도, 채상병, 김건희 특검도 막아내야 하니 공적으로 협조는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 많은 여당 대표?
“검사 출신이라 공무원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공무원은 텀이 생기면 자신의 효용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등판한 것 같다. 당대표가 그의 대선행보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 본다. 검사 이미지는 대통령이 이미 활용했는데,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내놨다. 정치적 휴식기를 충분히 취하지 않은 채 당대표에 도전하는 한 전 위원장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
앞서의 박 평론가 역시 한 전 위원장이 향후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이미지 소모가 굉장히 심했던 데다, 현재는 정치력도 야당과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대선을 생각한다면 2026년 지방선거 때까지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 이대로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당도 정권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경우 ‘반문재인 정부’ 여론에 앞장서며 대통령이 됐는데, 안철수 의원의 도움이 있었고, 민주당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의 도움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대통령이 되는 것은 그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당대표는 무려 2년 동안 몰락한 당을 운영해야 하는데, 한 전 위원장은 아직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