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21대 국회 막바지에 모수개혁 합의가 불발된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 제시 먼저’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멈췄던 연금개혁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말 또는 9월 초로 예상되는 국정브리핑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월 20일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개혁 정부안을 9월 초까지 제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정부안이 나오면 연금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국민의힘 연금개혁특위 간사인 안상훈(55) 의원은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나올수록 야당이 정쟁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석열 정부 초대 사회수석을 지낸 그는 이번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 장기 전략인 ‘비전 2030’을 기획했고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사회정책 틀을 짰다.
20여년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안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후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앉았던 곳이 (시위를 위한) 땅바닥”이라며 “개원 첫날부터 연금특위를 했으면 지금쯤은 국민들에게 보여줄 연금개혁 방향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가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나 연금특위 활동에 대한 중간보고를 한 지난 8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부터 당내 연금특위를 가동하고 구조개혁 방안을 논의해왔다. 다음은 안 의원과의 일문일답.
- 추경호 원내대표·김상훈 정책위의장과의 비공개 회의에선 어떤 얘기가 오갔나. “국민의힘 연금특위에서 그동안 무엇을 했고, 21대 국회에서 추진했던 연금개혁이 왜 안 됐는지,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전달했다. 구조개혁을 하려면 보건복지위원회만으로는 어렵고 상설 연금개혁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 공부를 하면 연금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수렴될 수밖에 없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도 특위 활동을 보고한 바 있다. 국회에 상설 연금특위가 열릴 때까지 저희 연금특위는 계속 갈 예정이다.”
-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9월 초까지 연금 구조개혁 정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장관에게는 연금 구조개혁 전체를 혼자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기초연금은 기획재정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데 어떻게 혼자 하겠나. 정부에서 개혁안을 낸다고 되는 게 아니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해서 정리해야 하는 문제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복지위원장)이 복지위에서 하자고 얘기하는데 여러 상임위가 걸려 있는 큰 문제인 경우엔 국회법상 특위를 만들게 돼 있다. 국회 연금특위를 최대한 빨리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곧 발표될 정부안에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 안정화 장치 도입’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확대’ 등이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부안이 공식적으로 나온 것도 아닐뿐더러, 연금개혁에 있어서 굉장히 지엽적인 내용들이다. 추워서 옷을 입자고 하는데 노란 양말을 먼저 신자고 하는 격이다. 옷을 먼저 입어야 어울리는 양말을 신지 않겠나. 지금은 노란 양말을 신을지 빨간 양말을 신을지 이런 얘기만 하고 있다. 지금 나온 얘기로는 구조개혁이라 보기도 어렵다. 위 내용이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기초연금·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 국민의힘 차원의 연금개혁안이 있나. “제가 생각한 방향성은 있지만 연금개혁을 꼭 이루고 싶은 입장에서 공개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연금개혁은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어떤 안을 내는 순간 그 안은 안 된다고 보면 된다. 어떤 안이 나오든 야당은 ‘국민 부담’을 이유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정답을 냈는데 야당에서 ‘그것 빼고 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특위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인가. “정부가 강하게 밀고 나가서 연금개혁에 성공한 케이스는 전 세계에 단 하나도 없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 한다고 했을 때 ‘밀어붙이는 순간 이미 (개혁은) 끝난 것이고 마크롱(의 정치 인생)도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연금개혁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내세운 좌파 연합에 마크롱 대통령이 지지 않았나. 민주당이 정부안을 내라는 것은 흠집 잡기다. 연금개혁은 국민 부담을 늘리는 문제인데 누가 좋아하겠나. 공감대가 만들어졌어도 보험료 올라간다고 하면 다 싫어할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은 국회에서 해야 한다. 정부가 단일안을 내는 것은 연금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국회 합의로 연금개혁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연금개혁에 성공한 선진국들은 10~20년이 걸렸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매주 머리를 맞대도 그 정도가 걸린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특위를 빨리 가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특위에서 연금을 공부하고, 바람직한 개혁안을 논의하고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 구조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연금개혁의 목표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득 대체율과 보험료율만 가지고 논의가 이뤄졌다. 이제는 노후소득 보장, 노인빈곤 완화, 재정적 지속 가능성 3가지를 모두 잡아야 한다. 국제적으로 소득대체율은 공적연금으로 계산하는데 우리나라는 공적연금에 퇴직연금이 빠져 있다. 소득대체율은 퇴직연금으로 올리고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을 올려서 최소한 70년은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노인빈곤 문제와 관련해선 기초연금을 개혁해서 가난한 분들에게 더 많이 줘야 한다. 다층연금의 구조를 어떻게 재설정할지 논의하는 것이 구조개혁이다. 야당은 국민연금만 건드리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 의료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사회수석 시절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려는데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더라. 라면을 10명이 먹어야 하는데 1개밖에 없다면 아무리 맛있게 끓여도 못 나눠 먹지 않나. 라면을 몇 개 더 사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끌었다. 일종의 밑준비를 한 것이다. 다만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은 내가 용산을 나오고 2달 뒤에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의사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장기 파업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