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부가 2018년부터 매년 이어진 북한인권보고서를 8년 만에 발간하지 않는 것을 고려했다가 기존처럼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보고서를 생산은 하되,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아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8월 19일 “공개·비난 위주의 공세적, 개별적 북한인권정책이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인권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했다고 본다”는 이유로 ‘보고서 비공개’를 발표했다. 이번 비공개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처음 발간한 이 보고서는 비공개로 제작돼 국회 등에 보고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2024년에는 통일부를 통해 발간된 보고서를 전체 공개한 바 있다.
당장 북한인권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전문가들은 “보고서 비공개는 발간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한다. 민간단체 활동가들 역시 “투명한 공개를 통해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킬 수 있음에도 (비공개는) 아쉬운 결정”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관련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모순된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8년째 차곡차곡 쌓인 北 인권 실태
통일부는 지난 8월 12일 한 당국자를 통해 “북한 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자료로 발간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방안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북한인권보고서가 발간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 인권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실정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김태훈 변호사는 “보고서를 만약 발간하지 않는다면 이는 실정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인권보고서는 대부분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내부의 인권 침해 실태를 기록한 것이다. 2016년 당시 여야 합의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제작 관련 법령도 명시돼 있다. 북한인권법 6조는 ‘3년에 한 번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실태 조사’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13조에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립해 인권 실태에 관한 조사·연구 등을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는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2018년 첫 보고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작해왔다.
논란이 일자 통일부는 미발간에서 비공개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미공개 이유로 “2024년 보고서 발간 이후 새롭게 수집된 진술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명분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국내 북한인권 민간단체 소속 모 활동가는 주간조선에 “최근에 코로나 시기인 2020년 이후 탈북한 분들을 중심으로 공개 증언을 한 적이 있다”며 “북한이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굉장히 강화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것들도 분명히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롭게 수집된 진술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김 변호사는 “보고서 발간 못지않게 공개가 중요하다”면서 “‘발간’이라는 것은 공개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외에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취지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역시 “비공개로 한다는 것은 작성하지 않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며 “결국은 북한에 대해 눈을 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2023~2024년 이뤄진 ‘보고서 공개’는 우리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알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졌다. 그간 국제기구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관련 보고서는 지속적으로 기록 및 보존했을 뿐,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선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 돼”
북한인권보고서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당한 상황을 기록하는 것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민간단체 소속 활동가는 보고서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안보적 의미를 벗어나 ‘사람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라 보고서 공개 여부를 두고 오락가락하지만, 그 본질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는 또 “북한 주민이 직접 겪은 피해와 그들의 생명,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라며 “보고서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인 북한이탈주민들은 굉장히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탈주민을 중심으로) ‘정부가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공개된 보고서의 경우 실제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우선 국제사회에 북한 내부 주민들의 실상을 알려 북한 정권에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 Shaming·이름 불러서 창피 주기)’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특정 국가의 내부 인권에 대해 심각한 침해가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면 해당 국가는 조심하게 돼 있다”면서 “북한인권보고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단순히 국외에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에도 이를 알려 일종의 ‘경고’를 준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보고서가 ‘통일 이후 역사를 단죄하는 증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앞서 남 전 원장은 “실상을 정확하게 기록해놔야 역사를 단죄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자료로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서독처럼 책임자를 꼭 처벌한다기보다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북한 주민들의 한(恨)을 풀 수 있는 용도로 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 역시 “북한인권보고서는 반인도 범죄를 포함한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대선 후보 시절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독 북한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인권은 민주당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하거나 “북한 주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취임 후에도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 중 하나로 “북한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도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오락가락한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은 정권 초기부터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앞서 남 전 원장은 “인권보고서는 인류 보편적인 차원인데, 진보 정부로서 비공개하는 모양새라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 역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인권은 진보적 개념인데 굉장히 반대로 가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