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로 가슴을 울렸던 GOD의 ‘어머님께’에는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세대가 느끼는 어머니의 헌신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1980년대 우리 사회의 아버지는 곧 ‘가부장’이었다.
최근 기자와 통화한 소설 ‘가시고기’를 쓴 조창인 작가는 2000년 무렵 ‘가시고기’가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시대적 배경에서 찾았다. 당시 아버지들은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 사랑을 표현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사랑은 말 없는 헌신과 책임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야근도 많았고 직장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니, 집에 오면 지쳐서 자식들과 놀아줄 수 없었으니까요.” 조 작가는 당시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적 한계와 삶의 무게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요즈음은 다르다.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 3~4인 가족의 삶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맞벌이 가구는 더 이상 특별한 형태가 아니다. 통계청의 ‘2021년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초혼 신혼부부 중 맞벌이 부부의 비중은 54.9%에 달했다. 2017년 44.9%에서 꾸준히 증가한 수치로, 부부가 경제적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라는 이름, 달라진 풍경
아버지 역할도 변하고 있다. 과거의 ‘노동분업’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남편은 하루 평균 1시간24분 가사노동을 했고, 아내는 약 3시간32분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13분 증가했고,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은 17분 감소했다.
아버지의 역할은 단순히 ‘집안일 돕기’를 넘어 ‘육아 동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3년 약 1790명에서 2023년에는 약 3만5336명으로 급증했으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2013년에 매우 낮았던 수준에서 2023년에 약 28.0%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아버지를 ‘용감한 남자’로 여겼지만 이제는 ‘좋은 아빠’의 표상이다.
조창인 작가는 ‘가부장적’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전통적 아버지상이 아들과 딸에게 다르게 투영되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는 첫 훈육 방법은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40대 후반을 맞이한 아들의 심정은 조금 다르다. 40대 후반(1979년생)의 최원준 세종대 부동산 자산관리학과 교수는 대화 내내 한숨 섞인 어투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풀어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가 아버지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자, 주저 없이 “다른 시대, 다른 무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요즈음 40대 후반은 회사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과거 아버지 세대는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이다. 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60세 정년을 다 채우셨어요. IMF 이전에는 대기업 다니는 게 공무원 다니는 거랑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장 규모가 계속 커지고 인력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웬만하면 다 팀장까지는 달고 퇴직했죠. 취업도 비교적 쉬웠고, 조직 성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승진할 수 있었어요.”
최 교수에 따르면 그 시절 ‘가장’은 일찍 출근해 늦게 귀가하는 전형적 모습이었지만, 사회 구조 자체가 아버지에게 정년과 노후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힘들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40대까지 바쁘게 일한 뒤 50대부터 60대까지는 사실상 ‘편하게’ 다닌 셈이었죠. 직장에서 과장 달고 도장만 찍으며 보내는 시간도 많았으니까요.”
과거의 아버지는 ‘경제적 부양자’라는 무게를 짊어졌지만, 제도와 사회가 그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40~50대 아버지들은 다르다. IMF 이후 ‘정년 보장’은 사라졌다. 최 교수는 “지금은 50대만 돼도 버티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상무, 전무 못 달면 50세 즈음에 희망퇴직 권유가 옵니다. 예전처럼 ‘끝까지 다닐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대기업도 최근엔 40대 직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권했잖아요. ‘3년치 연봉 줄 테니 나가라’는 식이죠. 2010년대 이후부터는 ‘면 팀장’이라는 말이 일상화됐습니다. 후배가 임원이 되는데 본인은 팀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해졌죠. 예전 같으면 자존심 때문에 퇴직했겠지만, 지금은 버티는 게 미덕이 돼버렸습니다.”
최 교수는 이어 “이런 구조 속에서 중년 아버지들이 가장 먼저 퇴직 압박을 받는다.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하고, 결국 창업 전선에 내몰리지만 10명 중 7~8명은 망한다. 그러니 자살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며 씁쓸한 현실을 전했다.
최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아버지를 더 이상 ‘권위자’나 ‘부양자’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가 아버지를 볼 때 ‘존경’보다는 ‘불쌍하다’는 감정을 먼저 느낀다고 해요. IMF 이후 구조조정 세대인 우리를 보면 늘 긴장 속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으로 비치니까요. 자식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안정적인 울타리’라기보다 ‘함께 불안에 떠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거죠.”
‘내리사랑’의 무게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부모가 집 팔아 자식 대학 보내주면 자식이 당연히 부모를 모시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식들도 먹고살기 바빠요. 부모 부양은 불가능에 가깝죠. 결국 아버지는 자식에게도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동료’ 정도로 인식되는 거예요.”
사라진 환갑잔치와 ‘정년 연장’의 화두
“환갑잔치는 무슨, 조촐하게 밥이나 먹자.” 1980년대만 해도 ‘회갑연’은 자식들이 부모의 노고에 감사하며 성대하게 차려주는 큰 행사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식들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문화가 사라지면서 환갑잔치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경제적 독립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끝에는 ‘정년 연장’이라는 뜨거운 사회적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60세 정년’ 시대에 들어선 지 오래지만, 고령화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65세 정년’은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아버지가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대에는 ‘정년’이라는 개념이 희생과 명예의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버지’의 경제적 역할이 축소되고 ‘개인’으로서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더 오래 일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일본은 이미 정년 연장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제도 변화를 시행 중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하여, 정년 후에도 65세까지 근로 희망자가 일정 기준을 갖추면 고용될 수 있게 했다. 또한 2021년 개정법에서는 65~70세 연령대의 고령자에 대해 기업이 고용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의무’를 지도록 했다. 이러한 제도 변화의 결과, 2020년 기준 60~64세 일본인의 고용률은 약 71.0%에 이르렀다.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지는 문화다. 여기에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특징이 있다. 일본 전문가인 윤성준 동아시아총합연구소 서울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족의 ‘정(情)’을 바탕으로 희생과 헌신을 감당했다면, 일본의 아버지는 ‘사회적 룰(Rule)’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분석한다.
“어디 가서 맞고 오면 가서 때려줘라” “1등 해라”. 윤 소장은 한국의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렇게 요약한다. 한국 사회는 개개인의 성취와 성공을 중요시하며, 자식의 성장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정’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작용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야, 그딴 식으로 하면 대학도 못 간다”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데, 이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정’의 울타리 안에서 허용된다.
반면 일본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집단의 화합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윤 소장은 일본의 교육 방식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공동체 내의 조화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회적 룰은 가정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일본의 부모는 한국처럼 자식에게 직설적인 말을 하지 않으며, 가족끼리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집에 초대받아도 안방은 보여주지 않고 거실에서만 대화하는 것처럼,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러한 거리감은 ‘가족 부양’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진다. 일본의 아버지는 한국처럼 자식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인식이 약하다. 윤 소장은 “일본은 고등학교까지가 부모의 책임이고, 대학 이후부터는 본인 몫”이라고 말한다. 대학 등록금은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하고, 취직 후에는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다. 결혼할 때 집을 사주는 한국 문화와 달리, 일본은 본인이 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2016년 60세 정년을 도입한 뒤 65세 정년 연장 논의는 사회적 합의 없이 정체되어 있다. 2036년엔 한국 전체 인구의 30.9%가 65세 이상이 될 전망이다. 환갑잔치가 사라진 대신, ‘인생 2막’의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고, 고령자의 경제적 자립이 삶의 마지막 숙제가 되고 있다.
세대 사이, 갈등과 기대
한국 사회에서 정년 연장은 세대 갈등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청년층은 정년 연장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고용 절벽’을 초래할 것이라 우려한다. 이들은 “왜 우리가 부모 세대의 일자리 문제를 책임져야 하느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의 갈등은 정년 연장의 현실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1979년생 최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정년 연장이 말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상 사기업에는 큰 의미가 없어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에게는 희소식이겠죠. 하지만 민간기업은 65세, 70세 정년을 법으로 정해도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으로 얼마든지 내보낼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도 이걸 다 압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정년 65세’라고 말해도, 자식들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아버지, 어차피 회사에서 버틸 수 없잖아요’라는 식으로요.”
조창인 작가는 과거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의 아버지는 ‘나와 가족’을 동등하게 중시한다고 말한다.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전통적 가부장적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하지만 조 작가는 아버지 세대의 헌신을 단순히 희생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은 나라와 이웃을 위해 인내하고 헌신하는 힘으로 확장된다.”
이제 부모와 자식 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네가 내 노후다’라는 말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모는 자식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식 또한 부모를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희생과 책임의 이름이었다’라는 말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 그들은 자식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고, 아내와 함께 가사를 나누며,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꿈꾼다. 아버지는 ‘가족 부양자’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인생의 동반자’라는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