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의 스틸컷. photo IMDb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의 스틸컷. photo IMDb

최근 필자 주변에 여러 커플이 결혼했다. 대부분 30대 중후반이라 예전 같으면 늦은 결혼이라는 얘기를 들었겠지만 요즘에는 아무도 트집 잡지 않고, 오히려 제때 잘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또 결혼까지 가는 모습도 다양했다. 몇 년씩 연애한 끝에 결혼하는 커플도 있었지만, 각자 치열한 삶을 산 끝에소개나중매로만나1년만에결혼한사람도있었다.또 그 와중에 결혼하기 전에 미리 살림을 합치는 경우도 있었다. 꼭 결혼식을 치러야 같이 살기 시작한다는 개념은 예전처럼 강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20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은 나이 29살에 노처녀 취급을 당한다. 그보다 더 예전으로 가면 여자 나이가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당치도 않은 얘기도 있었다. 24일까지는 잘 팔리다가 25일에는 헐값에, 26일부터는 아예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은 20대에 결혼하는 사람이 희귀하고, 직장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얘기를 했다간 성비위로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또한 결혼하기 전에 살림을 합친 필자의 친구들은 동거를 한 셈인데, 옛날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과거에 결혼할 나이의 미혼 남녀가 같이 사는 일은 아주 드물뿐더러 문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에 대다수가 결혼하니 동거를 할 만한 시간이 없기도 했다.

한국의 비혼동거율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23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배우자와 사는 비율이 2.5% 정도라고 한다. 다만 같은 시기 한 설문에서 비혼동거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70%를 넘어섰으니 이 2.5%는 실제보다 작은 수치일 가능성이 크다. 전체 출생아동 중 혼외자 출생 비율도 꾸준히 증가해 5%를 넘어섰는데, 현행법상 낙태가 불법이 아니고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피임이 어려워졌을 리는 없으니 결혼하지 않은 성인이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한 경우가 예전보다 늘었다는 말이 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추계 웨덱스 웨딩박람회에서 예비 부부들이 전시된 드레스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스1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추계 웨덱스 웨딩박람회에서 예비 부부들이 전시된 드레스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스1

비혼동거와 혼외출산 증가

우리나라가 특이한 경우일까? 사실 우리나라의 인구 상황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그리 특이한 편은 아니다. 출산율이 매우 낮아 인구 위기의 정도가 심하지만 다른 나라의 출산율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인구위기의 핵심적 원인은 공유하고 있다. 또한 초혼 연령이 예전보다 올라갔지만 세계적으로 한국의 초혼 연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이다. 다만 비혼동거, 혼외출산의 경우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별난 면이 있다.

세계적으로 동거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서 인구학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가족 형태가 되었다. 미국의 경우 2019년에 전체 가구 중12%가 비혼 동거 가구라는 통계가 나왔고, 같은 해 설문에서 미국 전체 성인 중 59%가 동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결혼 경험이 있는 성인은 50%밖에 되지 않았다.) 캐나다는 동거 가구 비중이 23%로 더 높고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30%를 초과한다. 2.5%가 실제보다 작은 수치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은 비혼동거가 유별나게 적은 나라인 것이다.

혼외출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4년 OECD 데이터를 보면 태어난 아이의 부모가 결혼하지 않은 비율은 칠레나 멕시코, 프랑스의 경우 50%를 넘고, 미국, 호주, 독일 같은 훨씬 보수적인 나라들도 30%를 넘는다. 한국과 일본, 튀르키예가 한 자릿수대 최하위권을 이루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비혼동거와 혼외출산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고 혼외출산율도 높아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둘 다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정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동거가 증가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문화가 서양 문물과 개인주의에 물들어 퇴폐적으로 바뀐 것일까? 어르신들의 인식을 바꿔보려 시도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원래 문화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단히 보수적인 나라이다. 한국의 동거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지만,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 힌트가 있다. 이에 따르면 동거를 선택한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인 이유로, 전체 응답자의 30% 정도에 해당한다. 앞으로 혼인신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결혼을 위한 경제적인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아서 일단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방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혹은 결혼 규범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동거한다는 응답도 있었으나 경제적인 문제에 비해서는 응답 비중이 적었다.

학계에서는 어떤 분석을 내놓고 있을까? 필자는 경제학, 그중에서도 ‘가족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말 그대로 결혼·출산 같은 가족형성을 연구한다. 경제학자가 이런 문제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도 있겠는데, 1970년대 이후로는 경제학자가 결혼도 연구하게 되었다. 시카고 학파인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의 업적이다. 성인이 가족을 이루어 같이 사는 데는 문화적 요인 외에도 여러 경제적 이점이 있다. 서로 호감을 가진 상대와 같이 살면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고(경제학은 행복에 관한 학문이다), 자녀가 가져다 주는 행복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여럿이 함께 살면 생활비를 절감할 수 있고 자녀 양육 같은 가족 전체의 사업에 힘을 합칠 수 있다. 또 개개인의 능력이 다르므로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하고 서로 의존하면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실업 등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이것의 극단적인 경우가 한 사람은 직장에, 한 사람은 가사노동에 전문화하는 가부장제 모델이다.

이렇게 가족을 이루는 이점을 취하기 위해 성인은 ‘결혼 시장’에 진입하는데, 이는 실제로 시장이 선다는 말이 아니라 성인이 배우자를 찾는 과정을 시장의 논리로 분석해 본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연애, 동거, 결혼을 불문하고 한 사람의 배우자만을 받아들이므로 특정 배우자를 선택하면 다른 모든 배우자와 그들의 소득, 성격 같은 특성을 기회비용으로 포기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배우자 선택 과정은 경제학적 논리로 분석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인 이유도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데, 두 번째 배우자부터는 세 명이 한 가정을 이루는 비용에 비해 삶의 질이 상승하는 정도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혼은 과연 필요한가?

결혼을 이해하는 데 첫 번째 의문은 왜 결혼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앞서 말한 가족 형성의 여러 이점을취하는 데는 두 배우자가 합의하에 같이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애써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 가며 예식을 올리고, 외도나 방임 등으로 결혼 합의를 깨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이유가 뭘까?

한 가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결혼이 계약으로써 기능하며 사람들의 협력을 돕는다는 말이다. 법적으로 강제적인 계약으로 결혼의 내용을 정하면 더 안정적으로 자녀 양육 등 가족의 공동 과제에 투자 할 수있다. 가정내 전문화도 촉진되는데, 예를 들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배우자는 그만큼 소득 능력을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생계를 배우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 결혼제도가 이혼을 어렵게 하니 안심하고 가사노동에 집중할 수 있다.

결국 결혼이란 더 행복하게, 그리고 더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렇게 따지면 의문점이 든다. 앞서 보았듯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동거를 선택하는 데는경제적 이유가, 다시 말해 결혼할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컸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지 이유는 결혼을 하는 비용이 올라서일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합동 결혼식도 있었다고 하고, 주로 일가친척들이 참석해서 국수를 대접했다. 유명인들이나 호텔에서 수백 명의 하객을 맞이하는 결혼식을 했었으니 오늘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톱스타급 결혼식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사는 집까지 준비해야 하니 결혼 준비가 만만치 않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예전만큼 가정 내 전문화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결혼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배우자를 보호해주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다른 한명의 배우자가 가구 전체의 소득을 담당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한편 교육비 등 자녀 양육에 드는 비용은 더 빨리 오르고 있으니 과거처럼 한 명이4인가족을 먹여살리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동질혼, 즉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맞벌이로 사는 경우가 많아진다. 동질혼의 혜택을 더 보기 위해서는 결혼 전에 더 많이, 더 오래 준비해야 하니 결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최근 진행한 연구에서 미국인들이 결혼과 동거 사이에서 선택하는 행태를 분석했는데, 소득 능력이 비슷할수록 동거보다 결혼을 선택하고, 소득 능력에 큰 차이가 날수록 결혼보다 동거를 선택 할 확률이 높았다. 더 버는 쪽이 여자쪽인지 남자 쪽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이성애자만 대상으로 분석했다.) 직장과 가사노동으로 전문화할 것을 기대하고 결혼했다면 이와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미국도 동질혼의 혜택을 볼 수 있으면 결혼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동거를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번 추석에는 가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가족 형성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과정이고, 그 형태가 동거가 되었든 결혼이 되었든 시작하고 유지하는 데 만만찮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왜 얼른 결혼하지 않는지를 묻기보다 요즘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구상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어떨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어주자. 그러는 게 우리 명절의 정신에 맞는 일이고 진정으로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다. 

김준형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ᆞ가족경제학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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