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북쪽에 자리한 덕진공원은 천년 고도 전주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장소다. 풍수지리에 의해 조성된 인공 연못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공립공원, 광복 후 대학 캠퍼스와 시민공원으로 변모하며 각 시대의 흔적을 켜켜이 쌓아왔다.
덕진연못의 시작은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백제 견훤이 전주로 도읍을 옮긴 시기부터 고려시대 사이,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전주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는 긴 제방이 축조됐다.
‘가련산’은 ‘이어질 수 있는 산’이란 뜻으로, 덕진연못의 제방으로 건지산과 연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었다. 고려시대부터 용왕제와 기우제가 거행되던 신성한 장소였고, 음력 5월 5일 단오에 창포물에 몸을 씻는 물맞이 행사가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창포가 우거진 연못물이 피부병을 낫게 한다는 믿음은 세대를 거쳐 전해졌으며, 1938년에는 3만여명이 모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단오날이면 전주 사람들은 덕진연못으로 향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그럼 일 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1930년대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단오 때 3만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 시절 완공된 덕진운동장에는 야구장과 육상경기장이 있어 사람들의 여가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광복 후 1949년 덕진운동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전북대학교가 들어섰다. 그때부터 덕진연못에는 대학생들의 낭만이 깃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연화정과 연화교가 만들어졌고, 산책로가 정비된 것도 이 시기다. 1978년에는 인근에 전주동물원까지 생기며 도시의 대표 여가장소로 떠올랐다.
지금 ‘덕진채련’, 즉 덕진연못에서 연꽃을 따는 풍경은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덕진호를 뒤덮은 초록한 연잎 사이로 수만 송이의 연꽃이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지면서 전주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책임지고 있다. 덕진공원 연꽃은 1974년 심어진 홍련으로, 진한 연분홍빛에 꽃봉오리가 크고 색이 진해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 스폿이다.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면 연화교와 연화정도서관은 방문객들에게 최고 인기 포토존이 된다.
비록 과거만큼 대대적인 풍습은 아니지만 매년 단오가 되면 덕진연못에서는 전통적인 물맞이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7월 연꽃 개화 시기와 저녁 음악분수쇼 시간에는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덕진공원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못 산책로와 연화정도서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풍수지리로 시작해 시민공원으로 이어진 긴 여정 속에서 덕진연못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전주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덕진연못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전주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창포길 45 (덕진공원 주차장)
대중교통: 시내버스 정류장 도립국악원 또는 기린대로덕진공원 하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