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스1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스1

한국갤럽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증시 호황과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 유리한 이슈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못했다. 한국갤럽 10월 5주차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일주일 전 43%에서 41%로 하락했고, NBS 조사도 39%에 머물렀다. 원인은 정부와 여당이 자초한 악재들이었다.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국회 출석 논란과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딸 결혼식 축의금 논란에 국민은 개탄했다. 

여기에 10·15 부동산 규제의 후폭풍도 불만을 키웠다.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제1차관의 ‘집값 떨어지면 사라’ 발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시세보다 높은 ‘아파트 호가’ 논란 등 ‘부동산 내로남불’은 청년과 무주택자의 분노를 샀다.

여권의 사법개혁은 ‘대통령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한 권력 보호 수단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여론의 거센 역풍으로 추진이 중단된 ‘대통령 재판중지법’이 대표적이다. 사법개혁안 중 핵심으로 꼽혀온 ‘대법관 증원’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반대(43%)가 찬성(38%)보다 높았고, 민주당이 압박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도 반대(47%)가 찬성(42%)보다 높았다.

움직이지 않는 중도층

하지만 최근에는 여권발(發) 악재가 쏟아져도 야당 쪽으로 반사이익의 훈풍이 불지 않고 있다. ‘정치의 상식’이 작동하지 않는 이례적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6월 대선 이후 다섯 달째 20%대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 10월 5주차 조사에서도 한국갤럽은 26%, NBS는 25%로 민주당보다 14~15%포인트 뒤처졌다.

정부·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중도층 민심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 지지율은 전체 유권자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도층이 좌우한다. 한국갤럽 10월 5주차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43%)이 국민의힘(15%)을 세 배 가까이나 앞섰다. 지난 대선 직후인 6월 2주차 조사에서도 중도층은 민주당 47%, 국민의힘 15%였다. 그 사이 국민의힘은 8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출범했지만 중도층 지지율은 15%에서 요지부동이다.

정당 호감도 조사에서도 국민의힘(30%)은 민주당(49%)보다 19%포인트 낮았다.(10월 5주차 NBS 조사) 2022년 대선 직후 조사에서는 국민의힘(46%)이 민주당(42%)을 앞섰지만, 그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국민의힘이 호감도에서 열세인 것도 중도층의 차가운 평가 때문이다. 최근 중도층의 정당 호감도는 민주당 47%, 국민의힘 26%로 격차가 2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외면하는 이유로는 지지층만 바라보며 ‘집토끼 결집’에 매달린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전체 유권자 중 보수층 비율은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28%, NBS에서는 29%였다. 현재 국민의힘 지지율이 25~26%인 것을 감안하면, 보수층은 이미 결집할 만큼 결집한 셈이다. 

남은 과제는 외연 확장이다. 장동혁 대표 체제 출범 이후 국민의힘은 서울·대구 장외집회 등 대여(對與) 공세에 주력하며 핵심 지지층 결속에 집중했다. 중도층이 요구하는 ‘민생 중심·유능한 정당’으로의 변화 의지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여권의 ‘내란 정당’ 공세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장동혁 대표의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가 상징적 사례다. 당내에서도 즉각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관세, 안보 등에서 이재명 정부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모처럼 야당의 시간인데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느냐”고 했다. ‘내란 정당’ 프레임에 공감하는 중도층이 많은 것도 국민의힘에 부담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은 56%가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에 동조한 세력과 단절하지 못한다면 위헌정당 해산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대선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도 중도층의 표심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은 보수층에서는 75% 대 18%로 압도했지만, 중도층에서는 29% 대 59%로 뒤진 것이 패배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요즘 국민의힘 지도부에선 역설적으로 “선거 때마다 중도 타령 해서 망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연 확장보다 지지 세력 결집에 방점을 찍으며 이른바 ‘자강론(自强論)’이 당의 기조로 자리 잡고 있다. 장동혁 대표도 “내년 지방선거는 제2의 건국 전쟁이자 체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념보다 실용·경제·민생을 중시하는 중도층 유인 전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탄핵 찬성파를 ‘내부의 적’으로 지목했던 김민수 최고위원은 최근 한동훈 전 대표를 향해 “당심이 맞지 않으면 당을 떠나라”고 공개 발언했다. 불과 5개월 전 당원과 지지층 대상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한 전 대표의 득표율은 43.37%였다. 절반 가까운 지지를 얻은 당내 자원도 배제하는 배타적 ‘자강론’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뺄셈의 정치’는 국민의힘을 ‘신뢰의 위기’로 몰아넣는 주요 요인이다. 지난 9월 한국갤럽의 정당 신뢰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불신(64.5%)이 신뢰(17.5%)를 압도했다. 민주당은 신뢰(43.1%)가 불신(37.1%)보다 높은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위중하다. 특히 중도층의 국민의힘 신뢰도는 11.1%에 불과했다. 장동혁 대표는 신뢰도가 전체 유권자에서 18.9%에 그치면서 정청래 대표(39.6%)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20.1%)보다 낮았다.

 

‘뺄셈의 정치’ 하는 지도부 

국민의힘이 정부·여당의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갤럽 10월 3주차 조사에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더 많이 당선되길 바라는 쪽을 물었을 때 ‘여당 후보’(39%)와 ‘야당 후보’(36%)란 응답이 비슷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지지 정당을 묻는 항목에선 민주당(39%)과 국민의힘(25%)의 격차가 컸다. ‘야당의 승리’를 바라는 반여(反與) 정서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국민의힘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여 성향 유권자조차 상당수가 국민의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내로남불, 비정상적인 개혁 드라이브, 일부 인사의 위선 논란 등으로 국민의 시선이 냉담하다. 그러나 정권 심판 여론이 확산되지 않는 것은 국민의힘 역시 신뢰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고립을 자초하는 자강론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의 주체’가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여론조사 자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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