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핵 운동가이자 핵분야 전문가인 핵과학자연맹(FAS)의 한스 크리스텐슨 등은 지난 3월 ‘원자과학자회보(Th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기고한 ‘2025 중국의 핵무기’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중국 핵전력의 급속한 팽창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중국이 현재 약 6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9개 핵보유국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라고 지적했다. 미국 펜타곤의 평가에 따르면 중국의 핵무기는 2035년까지 1500기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은 여전히 ‘선제불사용’ 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나, 경고즉시발사 체계, 조기경보위성,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신형 고속증식로(CFR-600) 개발 등은 핵전력의 양적·질적 변환이 이미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동인은 시진핑 주석의 ‘강대국 전략’이다. 그는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강력한 전략적 억제체계 구축”을 천명하며, 핵전력을 중국의 강대국 지위와 체제 안정의 중심축으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고체연료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다탄두(MIRV), 극초음속 활공체, 조기경보체계를 통합한 ‘조기 반격’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제2격’을 넘어 ‘경고즉시발사’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비대칭적 핵약소국’이 아니라 사실상 ‘전략적 핵강국’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국의 급격한 핵전력 증강은 그러잖아도 의심스러운 미국의 확장억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한국·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핵우산’을 제공해왔지만, 중국의 핵확장은 이런 약속의 신뢰성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반격능력’ 강화 논의가 현실정책으로 부상했고, 한국에서도 ‘조건부 핵공유’ 혹은 ‘독자적 핵잠재력’에 대한 담론이 급부상했다.
이는 ‘확장억제의 균열’을 상징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동시에 중국의 핵전력 팽창은 남아시아 전역에 ‘연쇄적 핵확산’을 유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조용한 핵확장’은 ‘아시아판 미니 냉전’을 촉발하는 동인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러시아의 양극적 냉전구도에서 중국이 가세한 ‘핵3극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핵탄두와 운반체계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조용한 핵확장’은 핵억제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로써 오랫동안 단어 자체가 터부의 대상이었던 ‘핵무기·핵전쟁’이 어느덧 현실 정치에서의 일상적 용어로 돌아온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적 무력침략 이후 핵무기를 정치적 심리전의 핵심 도구로 전환시켰다. 푸틴은 핵무기가 실제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물리적 효용보다, ‘사용 가능성’ 자체가 창출하는 정치적·외교적 지렛대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핵무기는 모순적 존재다. 즉 실제 무기로 사용되는 순간 전략적 가치는 급격히 감소하지만, 사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협의 언어’로 작동될 때 최상의 정치적 투자수익(EOE)을 산출한다. 따라서 푸틴의 핵전략은 군사적 억제를 넘어 체계적 강압의 영역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는 핵무기가 ‘군사적 도구’에서 ‘정치적 도구’로 완벽하게 전용된 가장 명백한 사례로 평가된다.

中 핵에 대한 美의 두려움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영화 ‘다이너마이트의 집(A House of Dynamite)’은 단 한 발의 ICBM이 미 본토의 대도시 시카고로 날아가는 19분간의 대혼란을 세 개의 시점으로 그렸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정체 불명의 미사일 접근 중”이라는 경보가 울리자 일상의 대화가 얼어붙고, 군사 지휘부와 전략사령부(STRATCOM)의 분석팀은 발사 원점을 “러시아, 중국, 북한 중 하나”로 좁혀가며 필사적으로 궤적을 추적한다. 이 영화는 지난 10월 24일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이 개봉된 이래 첫 3일 동안 2000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특히 미국 관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미 본토가 언제든 정체불명의 핵미사일에 피격될 수 있다”는 현실적 두려움을 정면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랑하던 미사일방어체계가 연속적으로 실패하고, 결국에는 시카고 한복판에 핵폭탄이 떨어져 수백만 명이 순식간에 대량학살을 당할 수 있다는 악몽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괴롭힌다. 영화는 이것이 그 옛날 냉전기의 추상적 위협이 아니라, 오늘날 미·중·러 핵3극 체제 속에서 “핵전쟁이 더 이상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는 불안심리를 예리하게 짚었다. 관객들은 미사일 요격이 연거푸 실패하는 장면에서 ‘무적의 미국’ 신화가 붕괴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오랫동안 당연히 여기던 ‘신변안전·국가안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극한의 두려움에 진저리친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사회심리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55.8%)이 러시아 핵공격을, 55.0%가 북한의 핵사용을 두려워한다고 응답했다.
영화의 절정은 후반부에서 대통령이 ‘핵가방’을 받아드는 순간이다. 영화 막판 브래디 장군은 숨을 고르며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이건 현실입니다.(No, Mr. President, it’s reality.)” 영화 전체의 공포가 농축된 이 짧은 대사는 ‘핵우산·확장억제’라는 신화의 가면을 잔혹하게 깨부순다.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하필 그 순간에 미국의 첩보위성들이 먹통이 되었음) 거대한 핵폭탄이 시카고 머리 위에 떨어지기 직전이건만, 대통령은 3개의 핵 옵션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적으로부터 더 큰 핵보복을 당하여 미국 전체가 파멸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그래서 “이건 미칫 짓”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자국의 파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핵버튼을 누르지 못한다면, 설령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았더라도 자국이 핵보복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대통령이 핵우산·확장억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맹국을 위한 핵보복에 나서는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핵우산·확장억제가 상징하는 핵억제는 이성적 판단, 완벽한 정보, 통제된 감정이라는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사실상 실행불가능한 전제 위에서만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생존은 인간이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핵 억제는 인간의 합리성에 의존하지만,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속의 대통령은 단 몇 분 만에 “보복 혹은 멸망”을 선택해야 한다. 자국 대도시가 핵폭탄에 맞아 수십만, 수백만 국민들이 대량학살 당하기 직전인데도 그처럼 극심한 번민에 빠지거늘, 하물며 동맹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핵버튼을 누를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을까?
SSN은 핵우산·확장억제 보완재
새로운 핵3극 질서와 중국의 ‘조용한 핵부상’이 가속되는 환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의 연료 공급”을 요청받은 지 하루 만에 “한국의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을 찾은 헤그세스 전쟁장관(국방장관)은 미국이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핵잠수함은 한국 자체 방어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구체적 후속절차는 미 국무부·에너지부와의 긴밀한 공조하에 진행될 예정이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SSN) 건조와 보유를 승인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 구조가 전통적인 ‘일방적 수혜형’에서 실질적인 ‘공동 억제형’으로 진화한 최초의 사례로, 미국이 한반도 핵억제 전략에서 중대한 방향 전환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전까지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그 이유는 비확산 우려, 한·미원자력협정(123 Agreement) 제약, 그리고 확장억제 체계 내에서의 ‘균형’ 문제 등이다. 그중에서 확장억제 체계 내에서의 ‘균형’ 문제가 중요하다. 미국은 한국이 독자적인 핵잠 능력을 확보할 경우, 확장억제 구조 내에서 미국이 독점해온 핵전력 운용·통제에서의 위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이 핵연료 주기·잠항작전·전략자산 운용 등에서 일정 수준의 자율적 억제수단을 보유하게 되면, 미국의 억제 주도권과 전략적 통합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결단에 나선 결정적 이유는 이런 우려와 계산을 능가하는 부담과 리스크가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변곡점에 이르렀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억제력의 무게중심을 ‘미국 단독 핵우산’에서 ‘동맹의 지속전력·은밀성·기동성이 결합된 해양 억제력의 분산화’로 옮기려 한다. 한국 SSN은 위기 시 미국과 유엔사 증원 전력의 시간 간극을 메우고, 상시 감시·추적의 지속성으로 북한·중국의 잠수함 활동에 ‘비용’을 대폭 높여, 억제력의 하한선을 끌어올릴 수 있다. 동시에 이번 결정은 ‘부담 공유’와 ‘위험 분산’의 정치경제학과도 맞물린다.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의 요체는 ‘동맹의 자조적(self-help) 억제’를 높여 미국의 전략적·재정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 조선·전투함 분야까지 폭넓은 협력 의향을 공개적으로 언급(“잠수함뿐 아니라 수상함·전투함 등 다양한 분야 협력”)하며 경제·안보·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복합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핵무장’이 아니라 ‘핵추진’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정밀한 그림이다. 안규백 국방장관이 “대한민국에서 핵무기 보유는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시아판 NATO 구상의 가능성
아직은 먼나라 이야기처럼 보일지라도, 미국이 그토록 반대해 왔던 한국의 SSN 보유를 인정(나아가 ‘적극 협력’도 거론)한 사례에서 보듯, 이제는 지금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까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유는 기존의 억제구조가 더 이상 동맹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불가능의 영역’이 새로운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이디어에 속하는 것이 ‘아시아판 나토(Asian NATO)’라는 개념이다. 일견, 한때 철옹성처럼 보였던 유럽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조차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지둥대는 마당에, ‘아시아판 NATO’는 뜬금없는 공상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국 핵무력의 급팽창, 러시아의 일상적 핵공갈, 북한의 전술핵 고도화가 동시에 맞물린 새로운 핵3극 질서 속에서, 위와 같은 아이디어의 제도화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과제로 되고 있다.
펜타곤의 인도·태평양 차관보를 역임한 일라이 래트너는 지난 5월 27일 포린어페어스에 미국이 ‘태평양 방위조약(Pacific Defense Pact)’, 즉 ‘아시아판 NATO’ 창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중국몽’이라는 명목 아래 대만 점령, 남중국해 지배, 미국 동맹 약화, 역내 패권 장악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므로, 미국은 양자관계 중심의 ‘바퀴축-바퀴살(hub-and-spokes) 동맹’ 구조를 넘어 다층적·상호연계된 ‘격자형 동맹네트워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호주·일본·필리핀은 이미 군비 확충과 협력 심화를 통해 공통의 위협 인식을 형성했으며, 이들 3국을 중심으로 집단방위 체제를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의 오판을 억제하고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지라는 것이다. 래트너는 이러한 구상이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상호의무·공동억제를 전제로 하는 새로운 억제 패러다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태평양 방위조약’은 미·중 경쟁의 질서를 재정의하는 제도적 전환점으로, 중·러의 전략적 야합에 맞서 자유주의 진영이 집단방위 논리를 아시아로 확장하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참신·유효·실행가능 방책을 구상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는 풍부한 전략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방책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죽은) 방책이다. 현 시점에서 전략적 상상력은 상념의 유희가 아니라 생존의 명령(imperative)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핵(nuclear)’과 관련된 거의 모든 ‘N’자 단어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독자적 핵개발은 고사하고,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핵잠재력(nuclear latency),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조차 ‘nuclear’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배척과 매도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상력을 넘어 금기의 언어를 전략의 언어로 바꿔야 할 시간이다. 한때 금지·배척·매도의 대상이었던 ‘N’은 앞으로 우리의 생존·번영·안보를 지탱할 새로운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의 핵심 좌표가 되어야 한다. 결국 전략이란 현실 세계를 따라잡는 기술이 아니라 불가능을 설계하는 용기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십은 ‘불가능의 영역’을 ‘국가 생존의 언어’로 새로이 정의할 수 있는 전략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