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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정 아트블러드 대표.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헌혈 기증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혈액 관련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공개한 혈액 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월 24일 기준 B형을 제외한 모든 혈액형의 적혈구제제 보유량이 적정 수준인 ‘5일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5일분’이란 최근 평균적으로 하루에 사용되는 혈액량의 다섯 배, 즉 5일 동안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의미한다. 특히 A형은 3.1일분으로, ‘주의’ 단계(3일분 미만) 기준에 근접한 상황이다.

혈액 부족 사태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헌혈의 주축인 청년층 인구가 꾸준히 줄면서 혈액 공급량은 해마다 감소해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주목받는 국내 기업이 있다. 인공혈액 개발 스타트업 ‘아트블러드’다. 지난 9월 열린 LG ‘슈퍼스타트 데이’ 바이오 분야에 참가한 아트블러드는 당시 세포주 기반 인공혈액 기술을 선보이며 기업·투자자·산학 관계자들로부터 혁신 스타트업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10월 21일 서울 양재동 기업 부설연구소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아트블러드 백은정 대표는 “다른 의료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혈액 치료만큼은 여전히 헌혈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혈액이 부족해지면 혈액 질환 환자들은 생명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혈액형 상관없는 ‘깨끗한 피’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구리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로 20년 넘게 혈액 관련 연구를 이어온 백은정 대표는 2022년 직접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현장에서 혈액 부족 문제를 수도 없이 겪으면서,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며 “결국 직접 기술로 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혈액 사정이 악화되면서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수혈 기준도 한층 엄격해졌다.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는 보통 12~13g/dL 이상이어야 정상 범주에 속한다. 예전에는 혈액이 비교적 충분했기 때문에, 수치가 ‘10g/dL’만 돼도 수혈 치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사정이 다르다. 백 대표는 “요즘은 피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7~8g/dL’ 이하로 떨어져야 비로소 수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수혈 기준이 점점 더 엄격해진 것이다. 그는 “당연히 환자들은 혈색소 수치가 낮아질수록 힘들다”며 “극심한 피로감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그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혈액이 부족한 상황 외에도 수혈에는 여전히 혈액형과 면역 반응을 고려한 까다로운 조건이 따른다. 백 대표는 “수혈은 다른 사람의 인체 조직을 이식받는 것과 같다”며 수혈이 지닌 복잡한 과정을 설명했다. 기존의 수혈용 혈액에는 백혈구, 혈장, 혈소판 등 여러 성분이 섞여 있고, 이 중 ABO, Rh를 비롯해 수십 종의 혈액형 항원을 결정하는 단백질 등이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ABO와 Rh가 일치하면 적혈구 수혈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 밖의 항원이 다를 경우 면역 거부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인공 적혈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표면 항원을 거의 제거한 ‘깨끗한 적혈구’만을 배양할 수 있다. 즉 면역계를 자극하는 단백질이 없어 혈액형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수혈이 가능하다. 백 대표는 “결국 인공혈액은 혈액 부족 문제뿐 아니라 수혈 부작용까지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아트블러드는 세포주를 활용한 인공혈액 개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사람의 조혈모세포는 적혈구와 혈소판을 만들어낸다. 백 대표는 “계속 분열하는 조혈모세포에 증식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넣으면 ‘세포주(cell line)’가 만들어진다”며 “우리는 이 세포주를 확립해 인공혈액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세포주는 살아 있는 사람의 조혈모세포처럼 스스로 증식하며, 한 번 확립되면 사람의 헌혈 없이도 혈액을 생산할 수 있다. ‘몸 밖에서 피를 만드는 기술’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英·日이 못 한 걸 한국이 했다 

아트블러드는 영국과 일본 등 선진국 연구팀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현재 영국은 조혈모세포를 기반으로 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지만, 이 방식은 대량생산이 어렵다. 일본은 적혈구 대신 혈소판을 이용해 임상시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특히 영국과 일본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한 세포주는 암세포에서 유래했으며, HPV 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들어져 염색체 구조가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수혈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반면 아트블러드는 소규모 실험에서 출발해 현재는 7L 규모의 배양기에서 실제 적혈구 생산에 성공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50L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임상용 적혈구 의약품 생산을 위한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인증 공장도 설립한다.

백 대표는 “임상시험은 반드시 GMP 인증 시설에서 생산된 혈액으로만 진행할 수 있다”며 “임상을 통과해야 인공혈액의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새 공장에는 대형 배양기가 설치돼 임상시험을 위한 대량생산 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인공혈액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23년 ‘임상 적용이 가능한 최첨단 인공혈액 제제 생산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15년 장기 계획인 ‘인공혈액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아트블러드 역시 인공혈액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총 3단계로 추진된다. 현재는 1단계(3년 차)로, 임상용 인공혈액 생산의 기반 기술을 확보하는 단계다. 이후 다음 단계들에서 임상연구와 임상시험을 지원받고, 인공혈액의 대량생산 기술을 확보해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트블러드의 최종 목표는 인공혈액의 대량생산 및 상용화다. 백은정 대표는 “혈액 한 팩당 적혈구는 약 2×1012(2조)개가 필요하고, 실제로 환자 한 명에게 50팩 이상의 혈액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공급 규모를 키워 한 팩당 가격을 낮추고, 누구나 안심하고 수혈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속하여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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