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동물병원. photo 뉴시스
서울시내 한 동물병원. photo 뉴시스

법이 닿지 않는 음지의 동물병원 진료실, 불법 실험이 독버섯처럼 퍼졌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명 시대. 이제 네 집 중 한 집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평균 양육비는 한 달 20만원, 그중 절반이 진료비다. 보험 가입률은 1%대에 머무르고, 입원·수술비는 사람의 프리미엄 진료비와 맞먹는다. 한 보호자는 말한다. “우리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다만 그 ‘뭐든’에 불법이 있는 줄 몰랐을 뿐이죠.” 병원 문을 열면 작은 초음파실, 수술실, 재활치료실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동물병원 진료실은 이제 단순한 치료의 공간이 아니다. 사람의 의료 욕망이 반려동물의 몸을 통해 실험되는 현장이 됐다. 

그 성장의 가장자리에는 ‘효능이 불분명하지만 비싼 치료’들이 자리한다. 최근 개원가를 달군 것은 ‘엑소좀 주사’다. 세포에서 분비되는 미세한 소포, 줄기세포보다 간편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피부염·신장질환·관절염 환자에게 시술된다. 하지만 정식 허가를 받은 동물용 의약품은 아니다. 제조사는 병원과 ‘연구 협약’을 맺고 제제를 공급한다. 병원은 보호자에게 시술비를 받고 투여한다. 서류상으론 연구지만, 운영적으로는 진료이고, 실상은 판매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나서 현장조사를 벌였고, 무허가 제품을 유통한 업체들이 적발됐다. 검역본부는 “연구 목적이라도 상업적 사용이 확인되면 불법”이라며 약사법 61조(무허가 의약품 판매 금지)를 근거로 들었다. 엑소좀 사태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전에 줄기세포 배양액, 인체용 진통제, 심지어 마약류까지 무허가로 쓰였다. 최근 5년간 무허가 동물용 의약품 적발 건수는 1986건, 고발·수사로 이어진 것은 50여건에 불과하다. 온라인몰에선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한 항생제·호르몬제가 암암리에 거래되고, 소셜미디어(SNS)에는 ‘수입 제품 공동구매’가 버젓이 올라온다. 현장 단속은 더디고, 행정처분은 솜방망이다.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에 사용 내역을 보고하지 않은 병원도 수백 곳이지만, 적발된 뒤 영업정지를 받은 곳은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규제의 공백은 시장의 기회가 된다. ‘신기술’ ‘재생의학’ ‘줄기세포 유래’라는 단어가 보호자에게는 희망의 언어로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 진료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음지의 구조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근본적인 이유는 규제의 발전이 세포의 성장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동물용 의약품은 ‘약사법’과 ‘수의사법’을 부분 준용한다. 제조·품목허가, 안전성·유효성 심사 등 절차는 있지만, 사람 의료에 비하면 간격이 크다. 특히 세포나 세포유래물질(엑소좀 등)처럼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조항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식약처는 2023년 ‘세포외소포 치료제 품질·비임상·임상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아직 동물용 가이드를 내놓지 않았다. “사람용 가이드라인을 참고 중”이라는 말이 공식 답변의 전부였다.

또 하나의 공백은 ‘허가 전 예외적 사용’ 제도의 부재다. 사람의 경우, 예컨대 말기암·AIDS 같은 중증 환자에게는 임상 중인 신약을 조건부로 투여할 수 있다. ‘임상시험용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승인’이라 부르는 제도다. 하지만 동물용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임상 중인 제제를 투여하면 무조건 불법이 된다. 그래서 병원들은 ‘연구 협약’이라는 애매한 우산을 뒤집어쓴 채 시술을 이어간다. 법이 침묵한 자리에서 해석이 관행이 되고, 관행이 위법을 낳는다. 동물병원 내부의 사정도 있다. 대형 동물병원이 아닌 이상 자체 연구·배양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 “임상시험 허가 절차를 밟으면 최소 1년이 걸리지만, 보호자는 오늘이라도 치료를 원한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무허가 제품’이다. 결국 병원은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고, 법은 뒤에서 숨이 차 헐떡인다.

해외는 같은 문제를 ‘허용하되 관리’하는 방향으로 풀었다. 미국은 1994년 ‘AMDUCA(Animal Medicinal Drug Use Clarification Act)’를 제정했다. 허가받지 않은 약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반드시 수의사의 전문 판단·기록·보고가 전제된다. 부작용이나 사망 사례가 보고되면 즉시 회수 명령이 내려진다. 수의사가 이를 어길 경우 면허 정지·형사처벌이 병행된다. 유럽연합은 허가받은 수의약품이 없을 때 사람용 의약품이나 다른 국가의 수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과정(처방 이유, 대상 동물, 용량, 기록)을 모두 문서로 남겨야 한다. 일본은 ‘재생의료 안전법’ 체계 안에서 세포·세포유래물질 치료를 통합 관리한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문을 열되, 기록을 남긴다’. 즉 법이 기술을 막지 않되, 그 기술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도록 책임의 구조를 만든다. 반면 우리는 문이 열려 있는지도 모르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실험이 아닌 진료를 위하여

어느덧 프리미엄 수준의 펫케어는 사람 의료의 전초기지가 됐다. 신약 개발의 실험대이자, 보호자의 마지막 희망이 모이는 곳이다. 이전 세대의 ‘애완’이 정서였다면, 지금은 ‘의료 소비’가 문화가 됐다. 그만큼 규제의 수준도 성숙해야 한다.

첫째, 세포유래물질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엑소좀·세포배양액·유전자치료제 등 새로운 기술군을 어떻게 분류하고 평가할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품질관리, 비임상시험, 임상시험, 표시·광고까지 명확한 절차를 제시해야 불필요한 회색지대가 사라진다.

둘째, 예외적 사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해 임상 단계의 제제를 조건부로 허용하되 의무적으로 보호자 서면동의, 연구윤리심의, 사후 보고를 거치게 하는 제도다.

셋째, 연구협약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협약서 형식도 제각각이고, 데이터 공개·보호자 동의 절차가 부재하다. 표준 템플릿을 만들어 연구 목적·대상 기준·데이터 관리·보상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연구와 상업의 경계를 구분해야 신뢰가 생긴다.

넷째, 유통·광고 관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온라인 거래는 차단이 아니라 추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모니터링과 즉시 수사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범 시 면허취소 등 강력한 처벌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특히 무허가 제품을 시술·홍보한 병원에는 행정처분 외에 형사적 책임을 병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자 알권리 제도화가 필요하다. “이 약은 아직 허가받지 않았습니다”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부작용 위험이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을 고지하고 서면 동의를 받는 것, 그게 법과 신뢰의 최소선이다. 임상시험의 규제 틀에서 관리되지 않는 보호자의 서명 없는 불법 실험은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동물의료는 시장의 속도로 달리고, 법은 그 뒤를 쫓는다. ‘규제는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낡은 구호가 이 분야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법이 없어서 생명을 불법 실험에 맡긴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다. 동물 의료의 무허가 실험은 결국 사람 의료의 안전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실험의 경계가 무너지면, 내일은 그 실험이 사람에게 옮겨간다. 법은 억압이 아니라 보호다. 시장보다 법이 느릴 때, 실험의 대상이 되는 건 언제나 말 못 하는 존재들이다. 이제 그들에게도 법의 빛이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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