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만5세 무상교육·보육 완전 실행 : 저출생 위기, 영유아 무상교육·보육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만5세 무상교육·보육 완전 실행 : 저출생 위기, 영유아 무상교육·보육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4일 미국 뉴욕시가 새 시장을 선출했다. 조란 맘다니라는 사람이 당선되었는데, 34살의 젊은 나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뉴욕시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무상보육도 공약했다. 기존에 취약계층 3~4세 아동에게만 지원하던 무상보육을 시민 전부를 대상으로 생후 6주~5세에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무상버스 등은 현실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은 반면 무상보육 공약은 뉴욕주 주지사 케이시 호컬도 지지를 보탰다.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과 선진국 중 가장 심각한 여성 경력단절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맘다니의 파격 무상보육 공약

무상보육과 비슷한 정책을 뉴욕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뉴멕시코주도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 정책을 도입했다. 포르투갈은 2022년부터 1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한 부분적인 무상보육은 독일·영국·호주·북유럽 국가 등 여러 나라에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맘다니의 무상보육 공약은 이미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매년 50억~60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도 문제고, 아이들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도 따져봐야 한다.

무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를 위해 특히 고소득층이 적지 않은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러한 공공의 영역을 보육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단 비용을 따지기 전에 무상보육이 도움이 되는 일인지부터 따져보자. 제대로 활용만 할 수 있다면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고 가구의 양육비용을 줄일 수 있을 터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기존에 영유아 보육에 대한 연구는 주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것에 집중되었다. 그중 유명한 것이 1960년대 ‘페리 프리스쿨 프로그램’이란 것이다. 미국 미시간주 입실랜티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흑인가구의 3세 자녀 123명을 대상으로 무상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덕분에 프로그램이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또 프로그램의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연구진이 직접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을 하루 2.5시간씩 매일 2년간 제공하고, 담당 교사가 매주 집에 방문해 부모와도 상담했다. 당시 기준으로 최고급 프로그램을 제공한 만큼 비용도 한 아이당 1만7759달러(2006년 기준)가 들었다. 그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IQ시험으로 측정한 인지능력 개선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비인지능력’으로 불리는 성격이나 행동이 크게 개선되었다. 현재 페리 아동을 50년째 추적 조사하고 있는데, 교육성취, 소득, 범죄율 등의 측면에서 큰 효과를 보였고 그 후손들에게까지 혜택이 미쳤다. 

시카고대학의 제임스 헤크먼 교수진이 2010년 발표한 연구에서 이 프로그램을 세금으로 충당했다는 가정하에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에 미쳤을 영향을 추산해 보니 연평균 7에서 10%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을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에 대한 투자가 웬만한 실물자본 투자보다 나은 것이다. 

다만 이러한 프로그램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맘다니의 정책이 눈길을 끈 것은 무상보육을 취약계층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 시민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확장하면 필연적으로 비용이 상승하고 질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없을까?  1997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4세 아동에게 보편적 보육지원 제도를 시행했다. 부모는 하루에 5달러만 내고 나머지 비용은 주정부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1998년에는 3세 아동, 다음해 2세, 2000년에는 0세까지 보육지원을 혜택을 누리게 했다. 수많은 부모가 보육비 지원이 되는 보육시설을 이용했고 아이를 가진 여성의 노동참여율도 크게 상승했다. 막대한 주 정부 예산이 들었지만 결과가 좋다면 충분히 좋은 투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보육시설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2005년에 나온 분석에 따르면 보육시설의 60% 정도가 ‘최소한의 질적 수준’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되었고, 전체 시설의 25% 정도만이 ‘좋은 수준’이나 그 이상의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시설을 이용하니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마이클 베이커 교수진이 2005년과 2019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어린시절에 퀘백주의 보육시설을 이용했던 아이들은 여러 해가 지나서도 비인지능력과 건강 등에서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났다.

 

단계적으로 정책 확대해야

보편적 보육시설은 다 결과가 좋지 않은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2015년 시카고대학의 마그네 모그스타드 교수진은 1975년부터 노르웨이에서 점진적으로 확대 실시한 보편적 무상보육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저소득층이나 중산층 아동의 경우 무상보육의 혜택을 받으면 생애소득이 증가한 반면, 고소득층 아동은 오히려 소득이 감소했다. 한 아이당 보육시설 비용은 캐나다 등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니 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필요한 가구에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퀘백에서 무상보육시설을 이용한 가구의 상당수가 중산층이나 고소득 가구였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고소득자는 무상보육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페리 프로그램의 경우처럼 보육 서비스의 질이 높고, 또 페리나 노르웨이의 경우처럼 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할 경우 아동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작년부터 무상으로 초등생을 방과 후까지 돌보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실상은 공간도 부족했고 필요 인원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운영하니 교사들이 난색을 표했다. 프로그램의 질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현 정부는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상교육과 보육을 목표로 올해 예산을 배정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 무상보육은 막대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질적 수준을 높이기가 쉽지 않고, 또 아동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또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인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보육 지원은 필수적이다. 다만 조심스럽게 단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캐나다, 노르웨이 모두 단계적으로 보육정책을 확대하고 매번 분석, 평가해 정책의 성패를 판단했다. 우리나라도 섣불리 정책을 확대하기보단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가며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야 부모도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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