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20대 여성의 4분의1이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체감상 현실은 그 이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형수술은 쌍꺼풀 수술처럼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서 턱뼈를 자르는 위험한 수술까지 다양하다. 리프팅 수술, 지방흡입 수술처럼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수술도 흔해졌다. 이제 성형수술은 소수의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평소 하는 계약은 내용이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려면 아이스크림 고르고 돈을 내면 그대로 거래가 끝난다. 퀵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져다주면 퀵비를 받는다. 그러나 의사와 계약은 다르다. 병원에 몇 번을 가도 감기가 안 나은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이다. 치료를 받아도 결국 사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기가 안 낫는다고 병원비 환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병이 낫고 안 낫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의사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의사가 노력해도 안 나을 병은 낫지 않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의사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의사의 의무는 병을 낫게 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데까지다. 의사가 특별 취급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치료의 불가피성이다. 치료해도 병이 안 나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환자도 의사의 한계를 알지만, 그럼에도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성형수술은 치료인가?
문제는 이 논리가 성형수술에도 적용되느냐는 데 있다. 성형수술도 분명히 의사가 한다. 성형수술도 다른 수술처럼 결과가 의사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어떤 성형 명의도 환자(?)의 바람대로 만들어 줄 수 없다. 길거리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장원영, 차은우 같은 남녀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유다.
성형수술에는 불가피성도 없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안 해도 그만이란 말이다. 실패할 수 있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하는 암수술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성형수술에 실패한 의사도 다른 의사들처럼 ‘최선을 다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봐줘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
‘성형수술 실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부작용이다. 턱뼈를 깎다가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방흡입을 하다가 사망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의 성형수술인 성기 확대 수술로 성기능을 잃은 남자도 적지 않다. 미각을 잃거나, 좌우 가슴이 붙어버리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이런 부작용은 비유하자면 퀵서비스를 맡겼더니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다. 배송만 못 한 게 아니라 추가적인 손해까지 일으켜버렸다.
법원은 성형수술 부작용을 일반 의료사건처럼 다루고 있다. 암수술 부작용과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실수는 없었는지 살피고, 만약 실수가 있다면 책임을 묻고, 실수가 없다면 부작용이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의사의 잘못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은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실제 재판에서도 그렇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성형수술의 결과는 의사도 모른다. 의사의 솜씨와 실수 말고도 여러 변수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해서 의사가 잘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법의 대원칙대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자, 즉 환자가 의사의 잘못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용 목적 실패는 성형수술 부작용과 구별해야 한다. 부작용만 없다고 성형수술이 성공한 건 아니다. 성형수술은 원래 더 예뻐지려고 받는 수술이다. 더 예뻐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 실패다. 성형으로 코를 2㎜ 높이려고 했는데, 1㎜ 높아졌다면 역시 실패다. 성형수술로 장원영처럼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 내 모습에서 장원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면, 역시 실패다.
퀵서비스를 맡겼는데 배송을 못 하고 도로 들고 왔다면 퀵비를 환불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예뻐지지 않았다면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손해배상은 몰라도 성형수술비는 환불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퀵서비스와 성형수술은 차이가 있다. 물건 배송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하면 성공한다. 반면 성형수술은 실패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환자도 알면서 위험한 선택을 한다. 원하는 대로 예뻐지지 않았다고 해서 의사에게 전부 책임지라고 하기도 가혹한 이유다.
성형수술 계약 되돌아봐야
결국 이 문제는 환자와 의사의 계약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코를 2㎜ 높인다고 계약했으면 2㎜ 높여줘야 하고, 그렇게 안 됐으면 실패고 수술비는 환불해야 한다. 장원영처럼 만들어 준다고 계약했는데 장원영처럼 안 되면 수술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성형수술 계약은 성형수술의 본질과는 맞지 않는 면이 있다. ‘무슨 무슨 성형수술을 한다’는 식으로만 계약한다. 따라서 이 ‘무슨 무슨 성형수술’을 하기만 하면, 전혀 예뻐지지 않아도 성형외과 의사는 의무를 다한 꼴이 된다. 당연히 수술비도 내야 한다. 암수술과 완전히 동일한 논리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불가피성이 없는 성형수술에 암수술과 똑같은 특권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미용 목적 달성 실패에 있어서는 성형외과 의사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면제부가 무분별한 성형 권유와 도를 넘는 광고를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환자 개인이 성형외과를 상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항의 댓글 하나에도 명예훼손 고소가 돌아오는 게 현실이다.
성형수술은 이미 너무 흔한 우리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흔함 가운데서 계약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형수술의 핵심이 아름다움이라면, 계약의 핵심은 공정이다. 이제는 그 공정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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