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형마트 2위 사업자 홈플러스 매각이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홈플러스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청산 절차로 넘어갈 경우 임직원 2만명을 포함해 직간접 고용 약 10만명, 1800여곳의 납품 업체와 8000여 입점 업체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3년 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쌍용차(현 KG모빌리티)는 법정관리와 파산의 압박 속에서 수년간 매각을 시도한 끝에 2022년 극적으로 새 주인을 찾으며 회생 절차를 마무리했다. 당시 쌍용차 매각 여부에 달린 일자리만 16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 홈플러스가 맞닥뜨린 상황은 당시 쌍용차보다 한층 까다롭다. 인수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훨씬 크고, 잠재 인수 후보군도 제한적인 탓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등장한 인수 의향자들의 자금력과 경영 능력은 홈플러스의 새 주인이 되기에 한참 부족하다.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은 오는 11월 26일까지 추가 인수 후보를 기다린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선 이번 매각이 과거 쌍용차 사례와 비교해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쌍용차 매각 당시 상황은 참담했다. 장기간 경영난 끝에 자본잠식 사유가 발생했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수차례 공적 자금이 투입됐고 두 번째 법정관리까지 들어가면서 더는 시간을 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영회계법인은 당시 쌍용차의 청산가치를 약 9800억원, 존속가치를 6200억원으로 평가해 청산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직접 고용 5000명, 협력업체 고용 16만명의 일자리가 달려 새 인수자를 찾아야 했다. 쌍방울그룹·파빌리온PE·에디슨모터스 등이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실질적 인수 의지보다는 단기적 주가 효과에 관심을 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았다. KG그룹과 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은 구세주였다. 인수자금 약 4500억원, 운용자금 포함 총 7000억원 투입계획을 제시하며 확실한 의지를 보였고, 쌍용차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홈플러스를 둘러싼 상황은 쌍용차 때보다 좋지 않다. 홈플러스는 청산가치만 약 3조7000억원이 거론된다. 회생채권 규모가 약 2조8000억원인데, 여기에 전국 점포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는 리모델링과 시설투자도 필요하다. 물론 채권단 동의 여부에 따라 매각가는 청산가치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정상화까지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렉스인포텍과 스노마드 등 지금까지 등장한 인수 후보들은 자금력이나 경영능력에서 시장의 의구심을 자아낸다. 하렉스인포텍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3억원에 불과했고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스노마드 역시 지난해 매출이 116억원, 부채가 1375억원 등으로 두 곳 모두 인수 여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가장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후보는 쿠팡이다. 이미 온라인 유통의 지배적 위치에 있는 쿠팡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나온다. 쿠팡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아마존은 2017년 홀푸드 인수와 아마존프레시 브랜드 진출로 오프라인 식품 사업을 키웠다.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유통 인프라를 갖춘 대형 사업자이자 메가 푸드 마켓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쿠팡의 지난해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은 6조원, 별도기준으로 2조7000억원에 육박해 곳간 역시 넉넉한 편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롯데쇼핑)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이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마트의 상반기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은 약 1조603억원이지만 대부분이 종속사에 분산돼, 본사 단독으로는 수천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롯데마트는 상반기 말 연결기준 약 2조3414억원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여력은 있지만, 비용 효율화와 재무 안정화를 우선하는 기조가 강해 대규모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존 사업이 온라인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홈플러스 인수가 전략적 최우선 순위가 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과 업계에서 꾸준히 언급됐던 농협도 이미 인수 의사가 없다고 수차례 선을 그었다.
대형 PEF들도 무관심
빅딜을 주도해왔던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들도 상황이 쉽지 않다. IMM프라이빗에쿼티,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대형 딜을 검토할 만한 운용사들은 최근 들어 대규모 거래에서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더욱이 IMM프라이빗에쿼티는 1조4500억원을 주고 인수한 한샘 등 대형 포트폴리오 기업을 아직 매각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한앤컴퍼니와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조 단위 SK실트론 인수전에 뛰어들며 역량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경직된 PEF 시장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과거 활황기에는 전략적투자자(SI)들이 컨소시엄을 맺고 대기업 계열사 매각이나 알짜 비상장사 인수전에 뛰어들며 굵직한 거래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PEF와 이들 펀드에 출자하는 기관투자자(LP)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고, 차입매수(LBO)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민연금은 출자 선정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이나 수익화 과정 등을 집중 심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LP는 출자 확약 이후라도, 불법행위가 적발되거나 세무·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운용사에 대해 출자금 회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PEF들이 적극적으로 홈플러스 딜에 뛰어들기엔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앞서 증여·보증 등으로 약 30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지난 9월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2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유동성 압박에 내몰린 홈플러스는 최근 68개 임대 점포 중 임대료 협상이 어려운 15개 점포의 운영을 중단했다. 본사 직원들은 희망 무급 휴직에 돌입했고, 임원 급여 일부 반납 등이 회생절차 종료 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2015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는 한국 M&A 역사에서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MBK는 차입을 포함해 무려 7조6800억원을 베팅해 당시 한국 M&A 사상 최대 규모 거래를 성사시키며 단숨에 동북아 대표 PEF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유통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상황이 달라지면서 악몽을 꾸고 있다.
M&A 업계 관계자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에는 조 단위 딜이 갖는 상징성이 있었다. 업계에 승자로 각인될 기회이자 펀드 규모를 키울수록 다음 펀드 조성에서 유리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이즈가 작아도 업사이드가 확실한 기업, 조용하게 키울 수 있는 비상장사 투자가 좀 더 대세인 분위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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