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열린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1월 14일 발표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한 지 무려 16일 만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았다면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자화자찬할 일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핵잠수함 건조 장소와 시기를 명시하지 못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한국에서 짓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미국 내 필리조선소에서의 건조’를 공언한 바 있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리고 미국에 너무 많이 퍼주었다. 현금 투자 2000억달러 및 조선분야 1500억달러 투자로 3500억달러(약 510조원),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직접 투자하기로 한 1500억달러를 합하면 무려 5000억달러(약 730조원)에 달한다. 이와 별개로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장비 구매에 250억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달러 상당의 지원 제공 계획도 밝혔다. 대한항공도 360억달러 규모의 보잉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많이 벌었다”며 자랑하고 있는데, 과연 미국으로서는 자랑할 만한 막대한 규모다.

 

美 연방대법원 판결, 천재일우의 기회

한국으로서는 5000억달러의 대미투자 가운데 2000억달러(약 290조원)의 현금 투자만 놓고 봐도 지나친 부담이다. 1년에 200억달러(약 29조원)의 상한선을 둔다고는 하나, 그렇지 않아도 급상승 중인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다. 우리 기업의 막대한 대미투자는 산업공동화도 가속화할 것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가까운 민주노총마저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굴욕적 합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고 등급 무궁화대훈장과 금관 모형을 수여하고, 국빈급 의전을 제공하며 경제주권을 내줬다”면서 “경제협력이 아니라 종속의 새 장을 연 협상이었다”고 성토 중이다.

하지만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뉴욕시장 선거를 비롯한 ‘미니 지방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참패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보편관세’ 정책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 구두변론이 지난 11월 5일부터 시작됐는데, 대법관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보수 성향 재판관들이 ‘세금은 국민대표기관의 권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권한의 지나친 확대 시 행정부 권력 집중 우려’ 등의 입장을 표명하면서다.

미국 언론들은 ‘7 대 2’ 혹은 ‘6 대 3’으로 트럼프의 보편관세 정책이 위헌 또는 위법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신속 심리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1~2월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국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 같은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미 관세합의 문건과 관련해 당초 국회 비준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국회 비준동의 없이 ‘대미투자특별법’ 등 국내 이행 법안으로 내용을 구체화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양해각서(MOU)의 경우 조약이 아니고 비구속적 성격을 갖고 있고, 미국도 의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이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미 양국의 조약체결 관련 헌법 규정과 관행은 다르다. 미국은 대통령이 ‘상원의 조언과 동의’하에 조약을 체결하고 행정협정은 의회에 보고만 하면 된다. 한국은 대통령에게 조약체결권이 있으나, 우리 헌법 제60조 1항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MOU도 경우에 따라 비준동의 받아야”

그리고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 제2조 1항은 ‘조약은 특정 명칭에 관계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MOU도 조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세합의 MOU’는 헌법 제 60조 1항에 의거하여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헌이고 무효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만약 국회의 비준동의 없이 ‘대미투자특별법’ 등으로 국내 이행법안을 구체화하면 문제가 생긴다.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보편관세 정책에 대해 패소 판결을 했을 때, ‘한·미 관세합의 및 대미투자 관련 양해각서’(이하 ‘관세합의 MOU’)와 관련된 절차를 이미 완료하였다면 없던 것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조약을 무효로 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서 ‘한·미 관세합의 MOU’ 관련 절차를 마치지 못한 상태라면 완전히 사정이 다르다. 만약 트럼프가 패소하면 국회 비준동의 절차는 중단될 것이다. 자연히 ‘관세합의 MOU’ 역시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 한국은 천문학적인 대미투자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패소하면 “미국에 괴멸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며 ‘플랜B’를 공언하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근거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통해 관세압박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예봉은 꺾일 것이고, 관세 정책 입지는 급속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지금은 당리당략을 따질 때가 아니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연방대법원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서둘러서 해줄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 성향 참여연대도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과 산업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국회는 충분한 심의와 검증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이 같은 주장처럼 미 연방대법원의 재판 추이를 보면서 ‘관세합의 MOU’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되고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혹자는 한·미 정상 간 합의를 했고, 자동차 업계의 관세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국가 전체에 가하는 재정적 부담이 막대하고, 산업공동화도 우려된다.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압박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방법이 있다면 찾아야 한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국익만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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