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날 아침 출근길이 시끄럽습니다. 이날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돼 이른 아침부터 선거운동원과 유세차, 확성기로 거리가 북적입니다. 하지만 출근길 사람들의 표정은 ‘무관심’ 그 자체입니다. ‘내 선거’라고 여겼을 법한 지난 대선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다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왕왕거리는 유세차 옆을 바삐 지나칩니다.

한 명의 대통령을 뽑는 지난 대선 때보다 관심이 식었지만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지방권력을 뽑아야 합니다.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광역지자체 선거 동향만 주로 언론에 보도된 탓인지 이번 선거에 얼마나 많은 자리가 걸렸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기 전 도대체 이번에 얼마나 여러 번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하는지 궁금해 선관위 자료를 뒤져봤습니다. 선출 정수가 무려 4132명이라는데, 구체적으로 시·도지사 17명, 구·시·군의 장 226명, 시·도 의회의원 779명, 구·시·군 의회의원 2602명, 광역의원 비례대표 93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386명, 교육감 17명, 교육의원 5명 등이랍니다. 진짜 헤아리기 조차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이런 숱한 자리를 전부 선거로 뽑아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실생활에 와닿지 않는 선출직들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감입니다. 15년째 보수·진보로 나뉘어 피터지게 경쟁하긴 하는데 뭘 갖고 싸우는지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제대로 된 교육정책 토론을 들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2018년 치러진 시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아무도 찍지 않거나 잘못 표시한 무효표가 무려 97만표로 당시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의 2배 규모였다고 합니다. 아무런 관심 없이 막 찍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지자체 구조를 바탕으로 한 기초의회도 선거 때만 되면 폐지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초의회의 경우 알고 보면 세금 부과 등과 직결되는 조례 제정권이 막강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은 이들이 평소 뭘 하는지 제대로 모릅니다. 선거 때면 후보자 이름도 모른 채 표를 던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순간은 외유와 성추문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질 때뿐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에서만 구의원 후보 107명의 당선이 이미 확정됐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단독 출마나 경쟁자 사퇴 등으로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한 것인데, 왜 세금을 써가며 이런 선거를 치르는지 의아함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의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공천권을 휘두르는 국회의원들의 보좌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무투표 당선의 배경일 듯합니다.

이번호 런던통신을 보니까 영국의 지방선거는 우리보다 간결하고 저렴해 보입니다. 필자가 지난 5월 5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 개표 참관기를 썼는데, 그들은 지방자치도 내각제로 운영해 의원들만 뽑으면 다수당 의장이 지자체장 역할을 해나간다고 합니다. 런던 등 몇몇 시의회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복잡한 시·군·구 다층 구분 없이 그냥 지자체별로 지방의회 하나만 두고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 선거비용에 들이는 세금이 아까워 일일이 수개표를 한다는 영국인들 얘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뚱뚱한 지방선거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도 날씬하고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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