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본 조혈모세포. photo 게티이미지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본 조혈모세포. photo 게티이미지

미국 스탠퍼드대 어빙 와이즈먼 교수팀이 혈액 세포를 회춘시켜 면역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조혈줄기세포를 이용, 늙은 쥐의 혈액 세포 구성을 최적화해 면역체계를 젊은 시절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노화로 약해진 사람의 면역체계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면역 노화는 골수구 만드는 조혈모세포 탓

나이와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정비례 관계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정신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보통이고, 젊은 시절보다 의욕이 떨어져 활발하지 않은 생활에 젖어들기 쉽다. 면역체계도 약해지고 모든 장기 기능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혈액이나 세포를 교체해 젊음을 되찾으려는 연구를 이어왔다.

미국의 엑스프라이즈(XPRIZE)재단은 지난해 말 노화 현상을 역전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자)에 총 1억100만달러(약 1300억원)의 상금을 주겠다는 ‘20년 회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노화로 인한 근육, 면역, 신경 기능의 둔화를 다시 젊은 상태로 돌리는 방법을 찾기 위한 ‘항노화’ 연구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엑스프라이즈재단은 세계적 과제 해결을 위한 기술 혁신을 목표로 우주 탐사,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과제를 내건 경쟁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질병 없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물과 치료법, 생활 방식을 찾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노화는 26세부터 시작돼 신체 나이 38세에 이르렀을 때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9년 12월 스탠퍼드대 토니 와이스 코레이 교수팀은 인간이 80세 이상을 산다고 할 때 34세, 60세, 78세 때 노화가 촉진된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일생에 걸쳐 꾸준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총 3번의 ‘노화 부스터’를 겪으며 각 시점마다 급속도로 늙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 노인으로 들어선다는 의미의 나이인 60세 환갑의 과학적 증거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어빙 와이즈먼 교수photo oge.tmu.edu.tw
미국 스탠퍼드대 어빙 와이즈먼 교수photo oge.tmu.edu.tw

34세, 60세, 78세… 세 번의 노화 부스터

생명체의 몸은 여러 기관의 조합이다. 기관을 이루는 세포들은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세포로 끊임없이 교체된다. 하지만 오래된 세포는 서서히 노화되고 이것이 기관과 개체의 노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수명 연장이란 근본적으로 세포의 노화를 막는 것이다.

2018년 코레이 교수팀은 노화를 막는 방법의 하나로 ‘젊은 피 수혈’이라는 회춘 요법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건강한 젊은이의 피를 나이 든 사람의 몸속에 주입하면 자연 치유의 힘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어린 쥐의 피를 늙은 쥐에게 수혈하는 실험을 통해 노화가 멈추거나 역전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젊은 쥐에서 뽑아낸 소량의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제거한 것)을 늙은 쥐에게 직접 투입한 결과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스탠퍼드대의 와이즈먼 교수팀이 항체 치료법을 이용해 늙은 쥐의 ‘면역체계’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골수구를 주로 생성하는 줄기세포에 결합하는 항체를 만들어 이 세포를 제거해서 면역력 저하를 줄인 것이다. 면역력은 세균, 바이러스 같은 병원성 미생물에 대항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인체 방어시스템이다.

우리 몸의 골수에는 여러 면역세포를 일정한 비율로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가 있다. 혈액 속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모든 혈액 세포가 조혈모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액의 구성 요소들은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며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조혈모세포의 노화가 일어나면서 혈액의 구성 요소를 만들어내는 기능이 떨어진다. 특히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두 백혈구인 림프구와 골수구를 균형 있게 생산하지 못해 체내 면역 기능이 급격히 감소하는 면역 노화가 진행된다. 생산 체계의 균형을 잃은 조혈모세포는 노화가 진행될수록 골수구를 더 많이 만든다. 즉 림프구와 골수구를 똑같이 만드는 ‘균형 줄기세포(bal-HSC)’보다 골수구를 집중적으로 만드는 ‘골수 편향 줄기세포(my-HSC)’가 많아진다. 면역체계가 제 역할을 하려면 두 구성 요소가 비슷한 수준으로 생산돼야 한다.

 

노화 지표인 염증 감소, 면역체계 향상

림프구와 골수구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성분 구성이 변화한 혈액 세포는 면역력 감소와 함께 노화의 지표인 ‘염증’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 특정 병원체에 맞는 새로운 항체와 T세포를 만드는 림프구의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림프구는 해로운 병원체를 인식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항체를 만들고 병원체를 겨냥하는 B세포와 병원체를 직접 공격하는 T세포가 면역 반응을 구성한다. 노인들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 감염에 더 취약하고 백신 효과도 덜한 이유는 바로 B세포와 T세포를 만들어내는 림프구의 기능이 약해진 데 있다. 노인에게 나타나는 면역 노화는 암과 감염병, 자가면역질환 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연구팀은 노화된 조혈모세포의 생산 기능을 되돌리기 위해 ‘골수 편향 줄기세포’만을 없애는 면역요법을 개발했다. 젊은 조혈모세포에는 없고 노화된 조혈모세포 표면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단백질이 있는데, 이 요법은 노화된 조혈모세포의 표면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를 만들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골수 편향 줄기세포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56~70세 사람 나이와 비슷한 120주 된 생쥐 6마리에 이 항체를 주입했다. 그러자 골수 편향 줄기세포가 48%쯤 줄었다. 골수 세포가 제거되면서 늙은 쥐의 혈액 세포는 곧 림프구와 골수구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차례의 주사로 쥐 수명 12분의1에 해당하는 2개월 동안 균형이 유지됐다. 면역력 저하를 의미하는 염증 수치도 낮아졌다.

연구팀은 또 늙은 쥐의 면역체계가 실제로 젊은 상태로 회복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뒤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서도 높은 면역 반응을 보였다. 늙은 쥐의 면역체계를 젊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되었다.

와이즈먼 교수는 면역력 회복을 위한 이러한 항체 요법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지 확인하려면 전임상과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전에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자신들이 개발한 항체 요법이 암이나 염증성 질환 발병률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른 효과를 연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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