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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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의원 출신인 정병국(67) 청년정치학교장은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옛 소장파 중 한 명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한나라당이 역풍을 맞으면서 존폐 위기에 몰렸지만 정 교장은 소장파 의원들과 천막당사에서 투쟁하며 당 지도부에 개혁을 요구했다.

정 교장은 “당시에는 정치 생명을 걸고 뛰었던 절실함과 결기가 있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두 번의 연속적인 탄핵을 경험하고, 대선에서 졌는데도 뭐가 잘못됐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장은 “‘패거리 정치’를 깨기 위해선 내가 패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정치를 그만뒀다”고 했다.

이후 청년정치학교장을 지내며 청년 정치인을 양성하고, 시민 정치 교육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청년정치학교는 2017년 바른정당 창당 당시 정책연구소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지금은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강의와 토론, 멘토링 기회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 교장을 지난 6월 16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 이번 대선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만큼 보수 위기는 예정된 것이었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선거를 치렀다고 보수 정당이 유리했을까. 전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국면이 지속됐다가 2년 뒤에 대선을 맞았다면 완전히 고착화됐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정치 변화의 계기를 빨리 맞이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중진들은 본인의 정치 생명을 어떻게 연장을 할 것인지, 당권 싸움에서 어떻게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 2004년 존폐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의 상황과 비교하면 어떤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실패하고, ‘차떼기 사건’(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수수)이 터지면서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렸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 젊은 의원들의 결기는 대단했다. 당사를 비롯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천막당사를 치고 투쟁을 하니 당 지도부에서 공천을 빌미로 참여하지 말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30여명이 함께했는데 갈수록 한 명씩 빠지더라. 어느 날 딱 3명이 남았는데 그게 남경필, 원희룡 그리고 저였다. 다음날 정론관에 서서 ‘우리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론이 들끓으면서 당 지도부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대표가 됐다. 소장파 의원들은 박근혜 당시 신임 당대표가 첫 출근하는 날 당사로 못 들어가게 막고 현판을 떼서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러갔다.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50석도 못 얻는다고 했는데, 121석을 얻으면서 당이 살아났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경험한 보수 정당은 이번엔 ‘계엄에는 반대하지만 탄핵은 안 된다’고 했다. “왜 탄핵의 대상이 됐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 정당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것은 법이다. 법의 근거인 헌법을 어겼는데 정치적으로 불리하니까 우리 당 출신의 대통령을 탄핵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맞나.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지 당헌·당규와 정강 정책은 뭔지에 대해 공부를 해본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 당이 친윤(윤석열)계와 친한(한동훈)계로 쪼개졌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각 계파가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이 분명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줄을 서야 정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지에 따라 나뉘었다. 이는 계파가 아닌 ‘패거리 정치’다. 정당다운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 정치의 모순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는 등의 변화에 정당이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유튜브나 거리 정치를 주도했던 극단적 세력들에 휘둘리면서 우파가 망가졌다. 정상적으로 정치하는 사람이 조망을 받지 않으니까 자극적인 언어를 쓰고 현장으로 나가려 하는 것이다. 그 경쟁에서 우파 정치인이 이겼을지는 모르지만, 현실 정치에선 졌다.”

- 구심점이던 윤 전 대통령이 탈당했는데, 왜 친윤계는 건재할까.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모인 것이지 윤 전 대통령이 좋아서 뭉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좇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이 같은 행태에는 유권자들의 책임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당선시켜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으니 누가 나서겠나.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제안한 5대 개혁안은 논의를 열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다. 정치는 서로 다른 생각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김 위원장이 제시한 개혁안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막는 것은 정치가 부재한 것이다.”

- 기득권을 깨려면 개혁을 내세울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이 많아져야 하지 않나. “청년들이 줄서기 정치를 하고,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물갈이가 많이 되는 나라도 없다. 하지만 물갈이라는 명분 아래 패거리만 강화됐다. 근본적인 공천 구도를 깨지 않으면 세대교체는 의미 없다. 왜 엄청난 돈을 들여가면서 당대표가 되려고 하겠나. 공천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래야 조직원과 당원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협위원장들이 당원을 모집해서 중앙당에 제출할 때 명단을 복사해두지 않으면 누가 당원인지를 알 수 없다. 지역의 당협위원장이 바뀌면 누가 당원인지도 모른 채 정당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해 당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정당 활동이 기록되도록 하며, 이를 바탕으로 상향식 공천을 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원내 정당화다.”

- 보수 정당은 외부 인재를 수혈해서 선거를 치러왔는데. 왜 당에서 인재를 키우지 못할까. “보수 정당에 각계각층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로 여겨,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못 본다. 반면 민주당에는 재야 활동을 하면서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같이 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 밑바닥부터 정치를 해본 사람들로 보수 정당이 채워져야 한다. 밑바닥부터 다져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뭔가 다르지 않겠는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청년정치학교를 세웠다. 수강생 중 70%는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인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게 정치인데 정치 시민 교육을 어디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오더라. 올바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올바른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과 교류하면 사회가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 밑바닥부터 다진 사람이 보수 정당에 늘어나려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이던 2021년 제게 찾아와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 ‘당대표로서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 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적이고,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당신 마음대로 안 되니 지금은 당 체질을 개선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이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유명한 사람을 데려오는 게 인재영입위원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성공한 케이스가 한 명도 없었다. 한두 명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유명세를 탔다고 정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 청년 정치인을 대거 영입하자며 지역별로 최소한 10%를 청년으로 공천하자고 제안했다. 기초의원 7명, 광역의원 2명, 지자체장 1명 하면 최소 단위가 10명이지 않나. 그럼 지역별로 청년이 1명은 들어가는 것이다. 검증을 해야 하니 예비 인력으로 청년을 3명씩 선발하자고 했다. 하지만 최고위원회의에서의 극렬한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청년 정치인을 늘려야 한다.”

- 보수가 가져가야 하는 가치나 철학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법치주의, 다시 말해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할 수 없다. 좋은 걸 지키고 유지해 나가고 단계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게 보수다. 원칙이 흐트러지면 이게 지켜지겠나. 그러니 도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도덕적 성향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고 승승장구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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