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을 맞아 갖가지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기묘한 것은 국민통합이란 단어다.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빛을 찾은 날’인데도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국민통합’이란 용어가 더 부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대표 80명을 임명해 나이·계층·성별을 아우르는 ‘국민통합’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주권과 자유는 80년 전 되찾았지만, 국민통합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일까? 광복 후 두 세대를 넘겨 세 번째 세대로 접어들었지만 분열, 갈등, 반목, 심지어 증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일까? 광복절을 맞아 국민통합을 외치는 것도 기묘하지만, 국민통합 분위기 속에서 전직 대통령 부부가 감옥에 있다는 것도 코미디다.
도쿄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광복 대신 종전(終戰)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패전(敗戰)이나 평화라는 용어도 들리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8월 15일을 ‘종전 80주년’으로 표현한다. 올해는 1925년 출생한 쇼와(昭和) 천황 100년 탄생 절목이기도 하다. 이미 1989년 저세상으로 간 히로히토(裕仁) 천황이지만, 종전 80주년과 함께 20세기 흑백필름 속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5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 세계 최대 고서점 거리 진보초에 갔다가 곧바로 야스쿠니로 향했다. 진보초에서 야스쿠니까지 1㎞ 정도다. 태양도 서쪽으로 기울고 해서 여름축제가 막 끝난 야스쿠니로 발길을 돌렸다. 일본에서 여름은 축제, 겨울은 온천에 간다. 공유 자전거로 5분 만에 도착했다. 도쿄는 자전거 천국이다. 대부분 평지라 힘도 들지 않고 안전하다. 지하철도 발달해 있지만, 자전거가 빠르고 몸에도 좋다.
밤인데도 야스쿠니로 몰리는 인파가 엄청나다. 여름축제가 끝났지만, 종이 등불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공물 술이 전시돼 있다. 야스쿠니는 한국의 동작동 국립묘지에 해당한다. 원래 도쿄는 도쿠가와 막부 정권의 중심지다. 전국적 차원의 전몰용사 무덤이 세워진 것은 메이지 신정부 출범 이후다. 교토에 머물던 메이지 천황이 거주지를 도쿄로 옮긴 것은 1869년 3월이다. 막부 당시 에도라 불리던 지명도 도쿄로 공식 개정된다. 야스쿠니는 도쿄를 기반으로 한 메이지 출범의 상징이다. 황궁이 도쿄로 옮긴 지 3개월 뒤, 1869년 6월 초혼사(招魂社)라는 공간이 세워진다. 메이지 황궁에서 불과 200m 떨어진, 현재의 야스쿠니다. 전쟁 전몰자의 혼을 기리는 땅이다. 19세기 중순 막부를 추종하던 상당수는 메이지 신정부에 반대해 싸웠다. 초혼사는 메이지를 따르는 전몰자에게만 허용됐다. 반군은 죽어서도 역적으로 처리되면서 초혼사 영역 밖이었다.

야스쿠니에 대한 시각차
한국에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야스쿠니에는 무덤이 없다. 뼈나 머리카락과 같은 유해와 고인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화장해 하나로 합치는 합장공간일 뿐이다. 개개인 전몰자를 위한 공간은 없고, 하나로 모아진 위패가 혼의 상징이다. 일본 종교관에서는 죽으면 모두 신이 된다고 믿고 있다. 야스쿠니에 합장된 모두가 신이라는 의미다. 야스쿠니 합장 추도와 공물 제공은 8월 15일 전후 단골 뉴스다. 해석하기 달렸지만, 한국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태평양전쟁 전범자 찬양으로 보고, 일본인은 죽은 신에 대한 예의로 대한다.
밤의 야스쿠니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한다. 혼이 머물고 혼을 추도하는 신성한 곳이지만, 실상은 디즈니랜드 엔터테인먼트 무대처럼 느껴진다. 전등 불빛도 환상적이고 음식이나 토산품 가게가 야스쿠니 안에 들어와 장사를 한다. 마치 동작동 국립묘지가 인사동 길거리 노점으로 변하는 식이랄까? 한국인이 보면 뭔가 불경스럽고 어색하게 와닿는다. 그러나 필자가 보면 너무도 일본적인 풍경이다. 일본은 신사나 절을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삼는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묘지든 사찰이든 상관없다. 장사꾼들은 본당 근처까지 와서 물건을 판다.
일본 신사와 사찰은 먹거리 이벤트의 현장이기도 하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어린이 놀이터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야스쿠니는 전몰자 추모객들로 채워진 꼰대들의 추억 재생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남녀노소 심지어 외국인도 함께 와서 즐기는 ‘현세의 오락 공간’이다. 비장하고 엄숙한 역사의 현장 이전에, 누구나 쉽게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행복의 땅이 되는 셈이다. 야스쿠니가 20세기 기억만이 아니라 21세기 일본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죽은 영혼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일본 국민통합 무대이자 현장으로서의 야스쿠니다.
‘국수(國守), 충혼, 일본정신, 진혼(鎭魂), 각오, 일심(一心).’ 필자가 야스쿠니에서 주목한 초등학생 붓글씨 전시관이다. 먹물로 쓴 한자 종이가 줄에 걸린 채 수십 미터 길게 늘어서 있다. 서예는 대부분의 일본 초등학교 교과과정 중 하나다. 필자도 일본 초등학교 서예교실에 참가한 적이 있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보다, 미리 준비하고 이후 정리하는 시간을 더 중시하는 교육으로 느껴졌다. 글자를 얼마나 예쁘게 쓰느냐가 아니라, 먹물과 종이로 뒤엉킨 책상과 주변을 깨끗이 정리정돈하는 데 주목한다. 전국의 어린이가 야스쿠니에 보낸 한자를 보면 미래 일본의 모습도 읽을 수 있다.
전시 현장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모습과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보다 공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자세다. 2025년 한국에서 ‘나라와 국가’를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는 어린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인이 본다면 일본 초등학생조차 우익이라 비난할지 모르겠다.
사실 일본 어린이, 아니 어른조차도 평소 ‘국가와 국민’에 무심하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집단의식이다. 일본인이라면 예외없이 갖고 있는 학교, 회사, 지역체 등 단위 집단에 대한 관심과 책임이다. 일상에서 일본인은 국가와 국민 같은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의 악몽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전체주의 군국주의’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에 기초한 문화 속 일본 유전자는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학교, 회사, 지역체, 심지어 오타쿠 집단이다. 국민이 아닌 개인 차원의 집단의식이다.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개인 차원이라지만 상황과 환경이 변할 경우 곧바로 국가와 국민으로 급변신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평소에도 집단적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으로의 전환도 빠르고 간단하게 이뤄질 수 있다.
필자는 야스쿠니에 걸린 어린이 붓글씨가 ‘국가와 국민’이란 개념 아래 만들어진 것이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이조차 학교, 친구, 동아리 활동 지역체와의 연결고리가 아주 견고하다. 뜻도 모르고 ‘일본정신 각오 일심’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위기로 흘러갈 경우 초등학생조차도 국가 차원의 구성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어린이는 ‘소국민(少國民)’이라 불렸다. 성인 국민과 비슷하게 행동하거나 취급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광복 80년에 즈음한 국민통합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일본은 국민통합은 없다. 그러나 위기 시 곧바로 강조할 집단통합은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광복과 종전 80주년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의 도쿄 방문이 거의 결정된 듯하다. 대통령실은 8월 25일로 잡힌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직전인 24일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실용적 한·일 관계 만들어가야
항상 강조하지만 일본과의 관계증진은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트럼프 관세협상에서 보듯, 만약 한·일이 공동대응해 맞섰다면 미국에 전부 말려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트럼프 전략이지만, 집단이나 지역별 협력기구를 무시한다. 상대국과의 ‘1 대 1 딜’을 통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관철해나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대통령의 방일 의지는 적극 환영할 만한 긍정적 자세다. 만나서 다투는 한이 있더라도 멀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대미 외교가 그러하듯, 한국의 대일 외교도 거의 수직추락 상황이다. 도쿄 주재 한국대사도 불러들인 지 오래고, 일본 측의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위안부 징용 문제 관련 한국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내 관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행이지만, 취임 즉시 이 대통령은 ‘한·일 양국 간 정책 일관성’을 강조했다. 일본 미디어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징용 피해 배상 ‘제3자 변제 해법’을 흔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아직 각론은 없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단발성 이벤트’로서의 한·일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이다. 뭔가 양국 국민 모두가 납득할 구체적이고도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만나서 일본으로부터 ‘과거 유감’ 발표를 받아낼 환경은 더더욱 아니다. 종전 80년에 즈음해 나타난 변화지만, 1945년을 기점으로 한 종전이란 단어를 없애자는 여론도 생기고 있다. 태평양전쟁으로 연결된 현대사가 아니라, 번영과 평화에 기초한 21세기 신시대에 접목된 역사에 주목한다. 종전이란 단어를 용도폐기하자는 생각이다.
‘일본인 우선주의’를 내세운 미니정당 ‘참정당’의 부상도 한국에 나타난 새로운 도전이다. 참정당은 ‘이민, 성소수자, 부부별성(別姓), 대중 정책, 대만 문제’에 관한 보수지향 젊은 정당이다. 한국에서 보면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지만, 아직 국가 단위의 ‘일본 퍼스트’를 주장하진 않는다. 국가가 아닌 국민으로서의 ‘일본인 퍼스트’에 방점을 두면서 트럼프와의 연대를 특히 강조한다. 필자 판단이지만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10명을 확보한 데 이어, 조만간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 대약진할 듯하다. 아직 참정당이 한국과 관련한 의제들을 들고나오지 않았지만, 참정당이 비판적으로 나설 경우 반한감정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
일본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가 생길 경우 한·일 정면충돌이 일상이 될 것이란 점이 걱정될 뿐이다. 양국 모두 정신승리야 가능하겠지만, 실제 대차대조표를 보면 손해만 밀려들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실용외교가 ‘특히’ 대일외교에 필요하다.
10월 추석 연휴가 최장 10일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해외여행 항공예약이 시작되고 있지만, 일본방문객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 기간 해외로 나가겠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43.1%가 일본을 방문국으로 꼽았다. 2위 방문국 베트남(13.2%), 3위 중국(9.6%)을 합쳐도 압도적 차이가 난다.
과장하면 추석연휴 한국인 해외여행자 2명 중 1명이 일본행이다. 올해 한국인 일본방문객은 10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인 한국방문객도 400만명에 이를 듯하다. 사람이 오가면서 문화, 정보, 세계관도 서로 교환되고 있다. 80년 전 역사를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한·일 시대 1년, 10년, 100년 기념으로 나아갈 시점도 머지않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