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이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photo ICE 홈페이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이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photo ICE 홈페이지

지난 9월 4일 트럼프 미국 정부는 미국국토안보수사국(HSI), 연방수사국(FB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DEA), 국세청(IRS) 등 다수의 연방기관들이 합동으로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ICE는 총 475명을 수갑과 쇠사슬로 묶어 체포했고 매우 열악한 시설에 집단 구금했다. 이 중 317명은 한국 근로자들이었다. 지난 9월 12일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일주일간의 구금생활 끝에 ‘자진출국’ 형식으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선 우리 한국 국민 모두는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직접투자 요구에 의해 ‘동맹국’인 미국 경제발전에 협력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던 공장건설 현장이었다. 그런데 ‘고마워’해야 할 미국 정부가 대규모 ‘마약소탕 작전’을 수행하듯이 수백 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을 중범죄인 취급했던 장면은 오래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한국인 집단인질사태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법원은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 히스패닉계 4명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실제 단속은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중무장한 수백 명의 연방정부 인원들이 헬기와 장갑차까지 동원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전쟁포로 취급하듯이 체포했다. 

사실 일부 한국 근로자들에게 비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이들은 도주하거나 불법체류해야 할 이해관계가 없다. 미국 건설현장에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며 한국 본사에 채용되어 있기 때문에 도주 또는 잠적한다는 것은 곧 직장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조용히’ 조사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국민적 모멸감을 준 이번 트럼프 정부의 ‘급습’은 어떻게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MAGA의 기반은 ‘반이민정책’

왜 트럼프는 동맹국인 한국과 외교마찰이 불 보듯 뻔한 조치를 강행했나? 모든 국가들에 대해 미국 투자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는 왜 투자 동기를 현격하게 꺾는 이런 조치를 취했나? 무엇이 트럼프로 하여금 이런 강경한 조치를 ‘선의의 투자국’이며 ‘동맹국’인 한국에 취하게 했나? 트럼프에게 이런 외교 및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트럼프는 이 사건을 불법체류자 문제로 규정했고 ICE의 단속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그들은 바이든을 통해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ICE도 한국 근로자들이 출장비자(B-1) 또는 전자여행허가(ESTA)로 입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을 했고 이것이 불법취업이기 때문에 단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에 투자 차원에서 입국한 근로자들에 대한 이와 같은 대규모 압수수색과 근로자 체포 및 구금은 전례가 없다. 따라서 전 세계에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체포되는 장면을 공개하고 그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의 계획된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사건의 발단부터 살펴보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용어가 나온다. MAGA는 트럼프의 대표적인 선거캠페인 슬로건이며 지지자들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용어다. 그런데 스스로를 MAGA 지지자이자 지역구 하원의원 예비후보라고 밝힌 토리 브래넘(Tori Branum)은 자신이 조지아 공장 건을 신고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그녀의 신고 시점에 있다. 브래넘은 언론 인터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수개월 전”에 ICE에 이 공장을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가 상당 기간 동안 준비하고 실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트럼프 정부는 왜 이 시점에서 대규모 ‘보여주기식’ 급습을 실행했나? 이번 사안은 두 가지 중요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첫째, 한국과의 투자협상 문제가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전 세계 국가들과 관세 및 투자협상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는 19~20%의 상호관세를 적용했지만  얻을 게  많은 한국과 일본은 15% 상호관세 적용 대신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았다. 일본은 5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한국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에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합의 결과에 불만이 많았다. 미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685억달러, 한국은 660억달러인데 양국의 투자 약정액은 차이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강조했던 농산물시장 개방 성과도 없었다. 

특히 수익배분 문제가 핵심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미 투자수익의 90%를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일본식 타협안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트럼프는 15% 관세 적용 행정명령 문서화를 미루고 있다. 요약하면 트럼프는 한국과의 협상 결과에 불만이 있음은 물론 미국 위주의 이익배분에 대해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다. 아마도 이번 트럼프 정부의 조지아 공장 ‘급습’의 직접적 원인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한·미 투자 실무협상’ 때문으로 보인다.

 

더 많은 유산 남기려는 트럼프

그럼 트럼프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동맹국 공장까지 ‘터는’ 장면을 보이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과 ‘일자리 늘리기’ 때문인가? 물론 트럼프는 관세전쟁을 통해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고 미국인의 일자리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관세전쟁’과 ‘반이민정책’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세력인 MAGA의 핵심가치이며 MAGA만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힘’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트럼프는 CNBC와 인터뷰에서 “2028년에 다시 출마하고 싶지만, 아마 안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내 지지율이 최고다. 사람들이 관세를 좋아하니까”라며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지난 3월에는 NBC와 인터뷰에서 “3선 출마를 위한 방법이 있다. 농담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월에는 “8년 대통령이 되겠다”는 식으로 3선을 암시했다. 트럼프 조직(Trump Organization)은 지난 4월부터 ‘트럼프 2028’ 모자(50달러)와 티셔츠를 판매하며 ‘규칙을 다시 쓰자(Rewrite the Rules)’라는 슬로건을 붙였다. 

물론 한국 공장 ‘급습’이 미국 수정헌법 제22조가 금지한 트럼프의 3선 출마를 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실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조지아 공장 급습이 ‘불법체류자 단속’과 ‘미국인 고용우선’이라는 미국우선주의 실천의 사례로 2026년 중간선거에서 MAGA 지지층(특히 미국 백인 노동자계층)을 결집시키는 데 활용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외국 기업도 예외 없다. 미국 노동자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지아공장 급습을 정치적 성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도 3선 출마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3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관세전쟁’ ‘반이민운동’ 등을 MAGA의 핵심가치로 규정하고 이들을 결속시켜 퇴임 이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가야 할 이유는 많다. 트럼프는 지난 3월 ‘X’에 “MAGA는 영원하다. 나는 그 중심에 있다”고 포스팅했다. 이번 사건은 MAGA의 가치를 실행한 트럼프의 ‘유산’으로 활용되고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소재로 활용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와의 갈등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는 더 많은 ‘유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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