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3일 서울 종로3가역 인근 한 혼밥 식당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23일 서울 종로3가역 인근 한 혼밥 식당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예전엔 밥도 단체생활이었는데, 지금은 밥이야말로 개인생활인 것 같아요.”

지난 9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하던 직장인 A(63)씨는 1986년 첫 입사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땐 팀원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메뉴를 먹는게 당연했다”며 “지금은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흩어져 각자 식당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관계에서 소외된 신호’로 해석되곤 했다. 1997년 8월 조선일보에 실린 하시바 기요시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 쓴 칼럼 ‘‘혼자’는 이상한 식사’에는 당시 혼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칼럼에는 “한국에서 혼자 외식을 하는 사람은 어지간한 괴짜이거나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는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실제로 어느 식당에 들어가 봐도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적혀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사회성이 없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뒤따랐다고 한다. 칼럼에 나오는 여성은 “늘 아침이면 ‘오늘은 누구와 점심을 먹을까’부터 고민한다”고 말해, 불과 한 세대전만 해도 혼밥이 얼마나 낯설고 어색한 행위였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식 ‘다찌’ 인테리어 확산

이 같은 시선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24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세 끼 식사를 한 사람의 비율은 모두 줄어든 반면, 식사한 사람 중 혼자 밥을 먹은 비율은 아침·점심·저녁 모두 증가했다. 특히 저녁 식사에서의 혼밥 비율은 20대가 34.8%로 가장 높았고, 이어 60세 이상(30.6%), 30대(25.0%) 순으로 나타났다. 이제 혼밥은 특정 세대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식사 방식이 됐다.

이 변화는 자연스럽게 외식업계로도 번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1인 식당을 운영하는 B(37)씨는 국내 최초 혼밥 전문 브랜드의 가맹점주다. 과거 혼밥 메뉴는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에 머물렀지만, 이 브랜드는 ‘혼자 먹기엔 벅차다’고 여겨지던 음식을 1인용으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인테리어 역시 처음부터 1인 가구를 겨냥해 다찌 형식으로 꾸몄다.

다찌는 주변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벽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일본식 1인 좌석 구조를 말한다. B씨는 “2015년 첫 매장을 연 뒤 불과 5년도 안돼 점포수가 100곳을 넘어섰다”며 “요즘에는 이런 형식의 가게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가맹점 수가 세 자릿수를 돌파한 것은 단순한 성공을 넘어 ‘혼밥 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외식업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1인 가구 42.2%까지 치솟아

혼밥 전문점이 빠르게 늘어난 배경에는 1인 가구의 급증이라는 사회 구조적 변화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전체 가구의 15.5%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36.1%까지 치솟았다. 행정안전부 집계로는 2025년 8월 현재 1인 가구가 전체의 42.2%(1024만여가구)에 달한다. 전국가구10곳중4곳이‘혼자사는집’인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혼인율 하락, 초혼 연령 지체, 이혼·별거, 고령화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결국 혼밥 시장의 성장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와 생활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결과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대학가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C(23)씨는 혼밥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C씨는“요즘은 공강 시간에도 친구들이랑 밥을 꼭 같이 먹지 않는다. 각자 편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수업 때 다시 만나면 된다”며 “혼자 먹으면 내 속도에 맞춰 여유롭게 먹을 수 있어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근처엔 혼자 먹기 좋은 식당이 워낙 많아 메뉴 고르는 재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배달 플랫폼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배달 플랫폼 1위인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말 ‘한그릇’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늘어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최소 주문 금액을 없애고, 주문 과정을 단순화해 혼자서도 부담없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한그릇 서비스는 오픈 첫 주 대비 주문량이 약 12배 늘었고, 서비스를 도입한 가게는 일주일 만에 주문수가 36% 증가했으며 매출도 21% 올랐다. 배달의민족이 한그릇 서비스로 성과를 내자 업계 2위인 쿠팡이츠도 결국 지난 8월 1인분 전용 서비스를 내놓으며 뒤따랐다.

이 같은 흐름은 배달의민족이 발간한 ‘2025 외식업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커뮤니티·블로그·소셜미디어(SNS) 등에서 혼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이 2014년 56%에서 2025년 83%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10년 만에 사회적 시선이 완전히 뒤바뀐 셈.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요즘 소비 유형 변화에 맞춰 최소 주문 금액 없이 소량의 음식을 주문하려는 니즈가 많아졌다”며 “앞으로도 고객과 업주들이 부담없이 한 그릇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혜택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전통에서 한국의 현재까지

2012년부터 방영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 ルメ)’에서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조용히 식사하며 음식에 집중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혼자 밥 먹는 즐거움’ 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안겼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일찍 혼밥 문화가 자리잡은 나라로 꼽힌다.

고대 나라(奈良)시대부터 일본인은 개인용 식탁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헤이안(平安)시대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도 각자 따로 작은 식탁을 두고 식사하는 관습이 이어졌다. ‘나눠 먹는 식사’보다는 ‘따로 먹는 식사’에 익숙했던 전통이 현대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오늘날 일본의 ‘이치란라멘’ 같은 식당의 칸막이좌석이나 벽을 보고 먹는 다찌 구조는 이런 배경하에서 발전한 형태다. 여기에 일본 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더해지면서, 혼밥은 외로운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역시 이제 혼밥이 낯설고 어색한 일이 아니라, 일본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편리한 선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혼밥은 메가트렌드라기보다 1인 가구 증가와 소·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밥값이 오르면서 혼자 먹고 바로 계산하는게 더 편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었고, 음식점들도 혼자 온 손님을 위한 공간과 메뉴를 내놓고 있다. 앞으로 혼밥 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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