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photo 뉴시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납치, 강간, 약탈, 고문, 폭행, 학살을 자행했다. 세계는 분노했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위시한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즉각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우물쭈물하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제재 불참에 별다른 설명은 없었으나, 러시아의 눈치를 살폈을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이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민주당의 여러 정치인들이 비슷한 발언을 이어간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이 러시아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으리라는 것도 넉넉하게 짐작된다.

대한민국이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자, 미국은 곧바로 FDPR 면제국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했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전자(반도체)와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7개 분야에 관한 세부 기술 전부가 제재 대상에 포함돼 면제국 지정을 받지 않으면 대러시아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러시아의 무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무역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러시아가 3국을 거쳐 우회수입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미국의 제재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국가와의 거래에서 지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경제는 무역에 절대의존하고 있고,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무역수지 흑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점을 고려했을 때 대한민국이 FDPR 면제국에서 제외된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위기를 실감한 대한민국 정부는 부랴부랴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고, 간신히 FDPR 면제국에 포함됐다. 주한 러시아대사는 즉각 남·북·러 경제 사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협박성 기자회견을 했다. 북·중·러(북한·중국·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굴종적 태도와 기회주의적 외교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한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도 북·중·러를 대상으로 한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이른바 ‘균형외교’라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전체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신냉전 국면은 본격화됐고,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전체주의 국가들 모두가 더 이상 기회주의적 행태를 좌시하지 않기 시작했다.

신냉전이 가속화되면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의 줄타기 외교는 이렇게 힘을 잃고 있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북·중·러 사이에서 ‘전략적 명확성’을 보여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참여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임기 초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외교적 선명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NATO 정상회담은 확대 정상회담으로서 30개의 회원국 이외에도 유럽연합과 15개국이 추가로 참여했다. 따라서 이번 NATO 정상회담은 단순한 군사동맹의 의미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을 다지는 행사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NATO 정상회담을 통해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번 NATO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선언을 통해 중국을 ‘전략적 도전자(Strategic Challenger)’로 규정했다. ‘전략적 도전자’가 아주 순화된 외교적 수사임을 감안했을 때 NATO는 사실상 중국을 적국으로 상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공동의 가치체계에 도전하는 나라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며,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 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2%로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라는 이유였다. 이는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왔던 기회주의적 친중 행보를 보일 때마다 단골처럼 쓰여온 명분이다.

그러나 대중 수출 규모만 놓고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대단히 근시안적 태도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경제블록인 BRICS가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25% 남짓인 반면, G7의 GDP 총합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50%에 이른다. 나머지 서방 국가들의 GDP까지 합산하여 본다면 서방 국가들의 GDP 총합은 전 세계 GDP의 65%에 육박한다. 세계 정치에서 대한민국이 진영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며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숫자로만 봐도 답은 간단하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의 대중 무역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상품들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중간재이고, 상당수가 대한민국의 첨단기술이다. 즉 중국은 기술의 격차로 인해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물건만 대한민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미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소비재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물건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또는 우호관계에 입각해서 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필요하면 수입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수입하지 않는다. 다른 예로서 중국과 호주는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중국은 호주의 철광석이나 석탄을 많은 규모로 사간다.

또한 우리는 국제사회를 향한 북·중·러의 위협에 NATO와 공동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주요 안보시설 해킹 및 무기밀수는 전 세계를 막론하고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공공연하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NATO는 이미 지리적 한계를 넘어 세계 여러 국가들과 다양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북대서양 양안에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NATO 협력은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오히려 지금이 NATO와 협력할 적기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에 쏟았던 정성만큼 그들은 우리를 따듯하게 살피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굴종적으로 보일 정도로 북한을 향해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북한이 대한민국에 돌려준 것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서해상에서 우리 공무원을 피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사건, 핵미사일 실험 따위에 불과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침공하고 크름반도를 병합했을 때 박근혜 정부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의리’를 보였지만 러시아는 언제나 북한에 대한 제재를 번번이 무력화시켰다. 대한민국을 향한 중국의 냉대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오래된 이념에 사로잡혀, 어설픈 판단에 흔들리며 줄타기할 때는 지났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우리는 같은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함께해야 한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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