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편식을 권하는 영양사는 없다. 그리고 편식하겠다고 굳이 스스로 선언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인간의 몸은 여러 영양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그것만 먹으면 몸에 탈이 나기 마련이다. 또 좋은 영양사는 식습관을 바꾸어야 할 때 서서히 식습관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몸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좋은 외교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 국적을 가진 5200만명의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세계 여러 국가의 시민들과 교류하고 교역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외교 원칙으로 균형 외교의 원칙을 천명하는 이유다.

잠깐 식단 이야기로 돌아오자. 필자를 포함해서 보통 사람들에겐 자주 섭취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특정한 생활 패턴 때문에, 혹은 어렸을 적 먹었던 맛있는 음식의 기억 때문에 특정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소위 편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편식을 하고 있더라도 편식을 더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는다. 내 몸에 여러 영양소가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국가와 친소 관계를 이미 맺고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요구가 없는 한 이미 맺은 관계를 강조하진 않는다. 되레 외교적 균형을 잡기 위해 추가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습관을 바꾸어야 할 때와 같이 외교적 지형의 변화가 생길 때도 변화의 충격이 크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 좋은 외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3박5일간의 일정으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비롯한 여러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나토 동맹국들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히며 세일즈 외교와 북한 비핵화 공조라는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토 정상회의에서 얻은 성과라는 것이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나토 회원국 공조는 올해 4월에 롭 바우어 나토 군사위원장 방한을 계기로 나토 대변인을 통해 “나토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공식적으로 이미 얻은 지지를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함으로써 얻은 성과라 보기는 어렵다.

세일즈 외교도 성과라고 강조했지만, 이번 순방에서 하나의 양해각서(MOU)도 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적 협상의 사전단계인 양해각서 자체가 유일한 성과지표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전준비를 거쳐 양해각서와 같은 실질적 성과를 가지고 왔던 역대 정부의 대통령 외교와는 비교된다.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15분간 15개국 정상을 만나 대화했다는 것 자체가 성과일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롭게 얻은 것은 분명하지 않지만 잃은 것이 되레 분명하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함께 참석한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의 말이다. 발언의 맥락은 중국 외에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한국의 나토 참석으로 예민해진 중국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히 부적절한 언급이었다.

한국 경제는 많은 국민들이 알다시피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수출에서도 수입에서도 한국의 제1 교역국이다. 한국 무역 수출의 25%, 수입의 22%를 중국이 차지할 만큼 대중 무역 비중이 크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된 반도체의 경우도 중국과의 연관성이 크다. 반도체 소재 수입액의 중국 비중은 2010년 12.7%에서 지난해 24.2%로 높아졌다. 중국과의 외교는 단순히 외교적 차원을 넘어서 한국 경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경제수석이 했던 중국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브리핑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컸던 이유이다. 이 발언을 두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한국 경제수석의 말을 알고 있다고 밝히며 한·중 교역이 전년도에 비해서도 증가하였으며 앞으로도 활발한 무역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우회적인 견제구를 던진 바 있다.

중국에 치우친 대외 무역을 다른 국가로 분산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필자는 동의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동남아시아와의 교류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동유럽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규모가 단일 국가로서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 지리적으로 한국과 인접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외교적 조치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이 보인 모습은 동유럽 국가와의 교류 강화라는 측면보다 중국을 분명하게 자극한 측면이 더 부각되었다. 그런 점에서는 ‘위험한 외교’였다.

2016년 사드 사태가 롯데그룹에 치명상을 입혔고, 지난해 소위 요소수 대란(중국의 요소수 수출 제한 조치)으로 한국의 디젤 화물차량들이 멈추어 설 위기에 처했었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고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전략문서는 중국을 유럽과 대서양 안보에 대한 구조적인 도전(systemic challenges)을 야기하는 존재로 명기하였는데, 중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구실 삼아 ‘신냉전’과 같은 인위적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지 말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환구시보라는 중국 언론은 한국의 나토 참석에 대해 불편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수출입 제한과 같은 경제보복 조치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지금 중국의 대응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낙관하긴 어렵다.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의 연임 여부가 올해 가을에 열릴 제20차 당대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연임에 부담이 되는 행동은 10월 전에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중국의 적극적 대응은 올해 말 이후에 진행될 가능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고려해서 미국과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5 대 5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한국이 놓여 있는 경제적·사회적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그에 맞는 조심스러운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생활습관, 구할 수 있는 식료품을 고려하여 조언을 주는 영양사가 좋은 영양사인 것처럼 말이다.

국제정세는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를 만들어 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특정 편을 정해서 선언해버리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해결의 선택지가 좁아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념에 갇히고 이상적인 방향만 말하는 외교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길을 막아두는 외교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두는 외교가 윤석열 정부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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