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 국제공항 공군 1호기에서 이륙 전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오른쪽 첫 번째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두 번째가 박진 외교부 장관. photo 뉴시스
해외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 국제공항 공군 1호기에서 이륙 전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오른쪽 첫 번째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두 번째가 박진 외교부 장관. photo 뉴시스

최근 북한이 다양한 형태의 전술핵 탑재 탄도미사일 공격 위협을 과시함으로써 한반도의 핵 안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위기는 결코 갑작스레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통한 ‘핵우산’으로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가려져온 위기의 실체가 드러난 것뿐이다.

북한은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전술핵운용 부대의 군사훈련’이라며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리고 일곱 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에 나섰다. 이번 도발은 한·미 확장억제의 핵심 전략 자산인 괌 주둔 미 7함대 로널드 레이건 항모강습단이 전개돼 한·미 및 한·미·일 합동 해상훈련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아랑곳 않고 계속됐다. 그 결과 베리 포젠 MIT 교수 등 미 현실주의자들의 우려대로 미국의 확장억제 체제가 성공적으로 작동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북한 도발에 노정된 확장억제 한계

무엇보다 북한의 이번 도발이 드러낸 미국의 확장억제 작동의 한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얘기될 수 있다. 일단 북한은 이번에 한·미 위성 및 항공 정찰 자산에 의해 탐지가 되지 않는 저수지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미 항모가 합동 해상훈련을 마치고 떠났다가 북한에 경고하고자 동해상으로 회귀하는데도 김정은은 이를 무시하고 추가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했다. 미 항모가 전개된 상태에서도 미사일 도발을 하는 것은 그전 같았으면 생각지도 못할 상황이다. 러시아와 중국 견제에 워싱턴이 정신이 팔려 있는 때를 북한이 도발의 시기로 선택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최근 미국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우려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대중 반도체 부품과 장비 수출 통제 등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 골몰해 왔다. 김정은으로서는 이 시기야말로 자신이 뭘 하든 미국이 견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은 미·러와 미·중 충돌이 동시에 발발하는 등 글로벌 질서가 혼란한 현 국면에서는 워싱턴이 현재의 확장 억제 체제로는 북한의 전술핵운용부대 훈련에 실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는데, 이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저서 ‘핵무기와 외교정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전략적 우회’로 볼 수 있다. 2차대전 때 거대한 진지들을 통한 방어 전략에만 골몰해 있던 프랑스를 기계화 부대를 앞세워 우회 돌파한 독일의 히틀러처럼 김정은도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활용해 미 항모강습단을 농락하면서 한반도 핵 안보 구도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번 도발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으나 북한의 비핵화까지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것이 대체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도발로 구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의 대남 전술핵무기 위협에 대한 억제도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고 비핵화는 7차 핵실험 강행 여부를 떠나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의 전술핵 위협도 실질적으로 억제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한계가 노정된 한·미 확장억제에만 기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을 확실하게 억제함과 동시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선택해야 할 전략적 대안은 무엇인가? 놀라운 것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는 헤겔의 말대로 현대사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과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략적 대안도 이 역사적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재임 시절 미국 카터 대통령과 회견에 나선 슈미트 서독 총리(왼쪽). 오른쪽 사진은 미국이 서독에 배치한 퍼싱-Ⅱ 미사일. photo 위키피디아
재임 시절 미국 카터 대통령과 회견에 나선 슈미트 서독 총리(왼쪽). 오른쪽 사진은 미국이 서독에 배치한 퍼싱-Ⅱ 미사일. photo 위키피디아

세계를 놀라게 한 슈미트의 결단

소련이 1977년부터 동독에 서유럽의 주요 지역을 타깃으로 하는 중거리핵미사일 SS-20을 배치하기 시작했을 서독 여론은 들끓었다. SS-20의 최우선 타깃이 되어버린 서독으로서는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사상 초유의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당시 1979년 12월 사회민주당(SPD) 소속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고심 끝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결정을 내린다. 미국에 SS-20보다 정확도가 15배 높고 10분 이내에 모스크바에 도달할 수 있는 중거리핵미사일인 퍼싱-Ⅱ 배치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 카터 미 행정부는 퍼싱-Ⅱ의 서유럽 배치보다는 그해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소련과 협상을 갖고 두 번째 전략무기감축협정(SALT Ⅱ)을 맺은 뒤 상원에 비준 요청을 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미 상원은 쿠바에 소련 전투여단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12월에 비준 연기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반대론자들인 서독 사민당 소속 지도자가 퍼싱-Ⅱ 배치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릴 줄은 전 세계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나토와의 합의를 통해 퍼싱-Ⅱ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이중 결정이라는 독자적인 발표를 내놓자 사민당 내부에서부터 동구와의 화해정책인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앞장서서 극심하게 반대했다.

당시 슈미트의 이 같은 결단은 ‘이중 결정(double-track decision)’으로 평가받는다. ‘이중(double-track)’의 의미는 당시 슈미트가 소련의 핵 위협에 대한 확실한 억제와 동독에 배치된 중거리핵미사일 SS-20의 철거라는 두 개의 목적을 겨냥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슈미트의 이중 결정이 발표된 직후 나토는 소련에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문제가 협상 의제에서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나토와의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소련과의 협상이 지연되는 상황이 지속되자 4년 뒤인 1983년 출범 3년째인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는 서독에 중거리핵미사일 퍼싱-Ⅱ를 전격적으로 배치해버렸다. 이로써 슈미트의 첫 번째 목적인 서독과 동독 간 ‘공포의 핵 균형’이 실현됐다. 그의 두 번째 목적인 SS-20 철거 역시 1987년 미·소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INF)이 체결됨으로써 결국 이루어졌다.

이중 결정이라는 슈미트의 결단은 동·서독 간의 핵 균형과 미·소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을 넘어서 냉전 체제의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보수정당인 기민당 소속인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1989년 동독이 무너짐에 따라 서독이 독일 통일을 달성하자 “냉전 체제의 종식은 슈미트의 이중 결정에 힘입어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 힘의 균형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 국가들은 당시 서독에 퍼싱-Ⅱ가 배치되면서 핵 위협이 통하지 않게 되자 경제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당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미 현실주의 전략가인 조지 케넌의 구상에 따라 추진되어 온 미국의 ‘봉쇄(containment)’ 정책으로 인해 생산력 저하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소련과 동구의 처지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이라는 선택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핵 균형을 넘어 냉전 종식 불러와

하지만 동독의 공산 정권은 이를 거부하다가 1989년 시민들의 봉기로 베를린장벽과 함께 무너졌다. 소련의 경우 레이건이 슈미트의 요구를 수용해 퍼싱-Ⅱ를 서독에 배치함과 동시에 개혁·개방 압력을 강화하던 1985년 초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이 사망하자 대미 유화 전략 차원에서 젊고 개혁적인 고르바초프라는 지방 당서기를 신임 서기장으로 선출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도 슈미트의 이중 결정이 가져온 역사적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레이건의 압박이 심상치 않다고 우려하던 그로미코 외상 등 온건파가 강경파가 없는 틈을 타 정치국 회의를 열고 고르바초프를 전격 발탁한 것이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했는데 그 결과 냉전이 종식됐다. 따라서 그 시작을 핵 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슈미트의 이중 결정이 냉전 종식을 가져왔다는 콜의 평가는 정확한 것이다.

이 같은 역사의 냉엄한 사실은 오늘날 북한의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은 물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실패해 온 한·미 모두에게 두 가지 중대한 교훈을 준다. 하나는 남북한 간의 핵 균형은 북한의 전술핵무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배치되어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퍼싱-Ⅱ 배치에 따라 동서독 핵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미·소 INF가 체결된 것처럼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배치되어야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제에 대해 진보 진영에서는 즉각 대대적인 반박 논리를 제기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최근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높아지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진보 학자들의 반론이 제기된 데서 확인된다. 한국에 미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약해지고 한반도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 반박 논리의 골자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의 전술핵 선제공격 위협을 확실하게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핵 균형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 미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면 김정은은 이번처럼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진보진영에서 전술핵이든 전략핵이든 미국의 핵 무력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미 확장 억제의 핵심 전략 자산인 레이건 항모강습단은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전술핵보다 파괴력이 월등한 전략핵무기를 장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북한의 연쇄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는 과녁이 잘못된 비판이다. 전술핵무기에 대한 억제를 파괴력이 압도적으로 큰 전략핵무기로 상대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기 힘들다. 김정은이 이번에 굳이 전술핵운용 부대 군사훈련임을 강조하면서 도발을 한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숨어 있다. 그는 전술핵무기 사용 훈련을 한다고 하면 전략핵무기를 장착한 미 항모강습단은 대응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겁낼 필요가 없다고 정확하게 본 것이다.

이제 이중 결정의 두 번째 목적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로 넘어갈 차례다. 요컨대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어떻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재배치되고 미 항모강습단이 언제든지 한국에 파견되는 한·미 확장 억제 체제가 상시 작동하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 것인가. 김정은으로서는 한국에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도 못하게 되고 미 본토를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전략핵무기를 장착해 공격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인 만큼 꿈도 꿀 수도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김정은은 핵무기 보유 자체가 쓸모가 없다는 자괴감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이 같은 판단에 이르면 한·미와의 비핵화 협상을 갖고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핵무기를 비싼 값에 팔려고 할 것이다.

지난 9월 30일 한·미·일 대잠전 훈련에 참가한 미측 전력들이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앞쪽부터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미국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미국 해상작전헬기(MH-60, 시호크). photo 뉴시스
지난 9월 30일 한·미·일 대잠전 훈련에 참가한 미측 전력들이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앞쪽부터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미국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미국 해상작전헬기(MH-60, 시호크). photo 뉴시스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를 왜 꺼릴까

이런 상황 전개는 절대 상상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슈미트의 이중 결정이 INF 체결을 통한 소련의 대(對)서유럽 핵 위협 해소에 기여한 뒤 동독 붕괴와 독일 통일을 넘어서 소련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져 결국 냉전 체제 종식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의 냉엄한 흐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은 1967년부터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터키(현 튀르키예) 등 나토 5개 동맹국과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약칭 NPG)을 창설해 B61 전술핵무기 150여개를 배치한 뒤 이들 나라들과 함께 연례 훈련을 해오고 있다. 미국이 이들 5개 나토 동맹국과는 이 같은 핵 공유 체제를 통해 러시아의 잠재적 핵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과시하는 것과 달리 왜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의 실재적인 핵위협에 맞서 그 같은 억지력을 과시해주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미국 같은 글로벌 패권국이 슈미트의 이중 결정이 낳은 역사적 결과를 모를 리가 없다고 본다면 결국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에 소극적인 까닭은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혁명 전후처럼 안보 전략이 급격하게 바뀌어 온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더라도 정권이 진보진영으로 넘어가면 갑작스레 철거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서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전술핵무기의 철수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할 만한 개연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미국이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 때문에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를 못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우리가 혈맹이라고 해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대신 나토 5개국과 미국이 운용해 오고 있는 핵계획그룹과 똑같이 한·미 또는 한·미·일·호주 간에 아시아 핵계획그룹이라는 전술핵 운용 협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북한의 전술핵 공격 위협을 정확하게 분석한 뒤 미국이 본토와 괌 등지에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전술핵무기 중 어떤 규모의 전술핵무기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한·일·호주가 미에 제안하되 최종 결정은 미 대통령이 내리는 ‘핵공유 체제(nuclear sharing mechanism)’를 가동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대응 전략인 것이다.

핵공유 체제의 핵심은 한국 등이 북한의 전술핵무기 공격 위협이 포착될 때마다 어떤 종류의 전술핵으로 대처할지를 미국과 상의하는 ‘협의권’을 갖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로서는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한·미 핵계획그룹이나 아시아핵계획그룹의 창설을 통한 전술핵 운용 협의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미 핵계획그룹의 경우 현재 한·미 양국이 운영 중인 ‘확장억제고위급전략협의체’가 당장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같은 협의체를 통해 미국이 보유한 모든 종류의 전술핵무기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유사시 어떤 핵무기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할 것인지 등을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대표적인 전술핵은 나토 5개국 6개 기지에 150기가 배치되어 있는 B61과 개량형인 B61-12 등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착용으로 새로 개발한 8㏏(킬로톤)의 저위력 신형 전술핵무기인 W76-2도 있다. B61이나 B61-12의 경우 파괴력의 범주가 0.5㏏부터 100㏏까지 상당히 폭넓은 전술핵이다.

 

미국과의 전술핵 협의권이 핵심

북한의 전술핵무기 위협은 미국의 전술핵무기 운용을 위한 협의권을 갖는 것만으로 일단 억제 가능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중거리핵미사일 위협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북한은 지난 10월 4일 오전 7시경 일본 상공을 지나 괌을 넘어 4500㎞가량 날아간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중국은 남중국해와 서태평양 해역으로의 미 해·공군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반접근과 지역거부(Anti-Access and Area-Denial·약칭 A2AD)’ 전략에 따라 둥펑21, 17, 15 등 중거리탄도핵미사일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이들 미사일은 중국 대륙 해안선을 따라 배치돼 있는데 랴오닝성에도 배치돼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 위협하는 북한과 중국의 이 같은 중거리핵미사일 대응 방안과 관련해서는 눈여겨볼 것이 있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때 1987년 체결된 미·소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을 파기하고 새로운 중거리핵미사일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미사일 생산 예산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배정되고 있는 만큼 이들 중거리핵미사일을 괌이나 오키나와에만 배치하다면 북한과 중국의 위협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2019년 8월 초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취임 직후 발언도 주목해야 한다. 에스퍼는 당시 호주와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언론 회견을 통해 “미국은 INF에서 탈퇴해 자유롭게 된 만큼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사거리 500㎞에서 5500㎞까지의 미사일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에스퍼가 이들 미사일을 배치하게 될 나라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동맹국들과 협의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에스퍼 장관은 이들 미사일이 재래식 전력이라고 주장했었지만 INF 자체가 퍼싱-Ⅱ의 서독 배치 이후 미·소 간에 이뤄진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이라는 점에서 에스퍼가 말한 중거리미사일은 핵미사일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에스퍼는 그 같은 중거리미사일들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의에는 답변을 피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A2AD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우회적으로 시인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미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미국이 이들 중거리핵미사일을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당시 에스퍼가 한국에 왔을 때 중국은 미국이 중거리핵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에 경고성 메시지를 내기도 했는데 에스퍼는 아시아에 배치한다고 했지 어느 국가라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함으로써 더 이상 중국을 자극하지 않았다.

 

트럼프 때 시작된 미 중거리핵미사일 변수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한의 전술핵무기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깊이 있는 전략적 논의가 우선 이루어져야 하지만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북한의 이번 도발로 미 확장 억제로는 북한의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중거리핵미사일 위협도 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워싱턴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현재의 확장 억제 체제를 전술핵 재배치나 전술핵 운용 협의권을 갖는 핵공유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13일 “지금 우리 국내와 미국 조야에 확장억제 관련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잘 경청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발언 이후 정부가 확장 억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국에 핵공유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언론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 같은 기대는 같은 날 조선일보가 톱뉴스로 “실질적 핵공유를 요청했다”고 보도함으로써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 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핵심 인사들이 회견 또는 비공개 간담회 등을 통해 언급한 바를 종합하면 현재의 확장 억제 기조로부터 조금도 움직일 의지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한 방송 회견에서 “전술핵을 재배치하기보다는 우리가 현재 가용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에 조율된 방식으로 한반도에 전개함으로써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점을 근거로 “미국도 전술핵을 재배치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존중해서인지 윤 정부 역시 워싱턴에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를 요청할 계획이 없음을 확인했다.

신 차관이 이같이 정리했다면 이는 윤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라인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요컨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김성한 실장과 김태효 1차장 역시 미 확장 억제의 한계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미 전략자산이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되도록 미국에 요청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대충 해소하고 넘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윤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이렇게 얼버무릴 수 있다고 인식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미 전략자산의 적시 한반도 이동은 우리가 미국에 요청한다고 해서 성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국의 전략자산이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술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을 가할 리도 만무하다. 더구나 권위주의 강국들인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의 핵 위협과 비교할 수 없는 위기를 조성할 경우 미 백악관과 펜타곤이 미 7함대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우선 급파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적시되어 있다는 이유에서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지레 포기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독의 슈미트 총리가, 그것도 진보정당인 사민당수가 이중 결정이라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을 궁극적으로 해소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국민이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근본적인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퍼싱-Ⅱ의 서독 배치는 슈미트 총리의 요구 4년 후인 1983년에나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슈미트 총리의 후임인 콜 총리의 적극적인 대미 설득 노력과 레이건의 대소 전략 간에 궁합이 맞아떨어지면서 퍼싱-Ⅱ가 배치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슈미트 총리가 퍼싱-Ⅱ 배치를 요구한 시기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서도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반복일 수 있다.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의 중거리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작심하고 INF를 파기한 끝에 새로 만들기 시작한 중거리핵미사일이 현재 한국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중거리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 데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퍼싱-Ⅱ 배치 뒤 소련과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인 INF를 체결하는 데 성공했던 역사가 되풀이될지 모르는 것이다. 미국의 신형 중거리핵미사일이 오키나와와 괌에 배치돼 중국과 북한의 중거리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힘의 균형을 이루면 이 또한 미국과 중·북 간 INF가 체결될 가능성을 높인다. 소련은 1979년 동독에 SS-20을 배치할 때만 해도 그것이 퍼싱-Ⅱ의 배치로 이어져 동서독 간 핵 균형을 허용하고 나아가 미국과의 중거리핵전력협정 체결과 개혁·개방으로 이어질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냉전시대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소련은 서유럽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자 동독에 SS-20을 배치하는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해체되는 비극을 당한 셈이다.

 

김정은의 ‘완벽한 승리’ 욕심이 부를 역풍

김정은이 이번에 미 확장 억제가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할 정도로 도발을 감행한 것도 소련의 SS-20 동독 배치 후 서독이 밟아간 경로와 비슷한 방향으로 한국을 움직일지 모른다. 이는 북핵 위협에 대한 최적의 대응 방안이 미의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체제 구축이라는 사실을 한국 사회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데서 확인된다. 

요컨대 김정은이 비핵 국가인 한국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자 시도할수록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의 전술핵 위협의 실체를 깨닫게 도와주면서 미국과의 핵공유를 바라는 목소리를 키우는 역설이 작용할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한·미 핵계획그룹을 통한 전술핵 운용 협의권을 한국에 주는 핵공유를 추진할 경우 북한도 퍼싱-Ⅱ 배치 후에 전개된 동독과 소련의 운명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핵 균형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김정은으로서는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개혁·개방 압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그동안 미국의 확장 억제가 갖는 문제점들을 상기시키고 핵공유 체제의 필요성을 제기해 온 국내 안보 전략가들과 싱크탱크들에 대한 평가가 적극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2월 미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 주관으로 개최된 ‘미국의 동맹국들과 핵무기 확산 문제에 대한 특별연구회’에 참여해 아시아 핵계획그룹을 창설해 한국, 일본, 호주 등을 미국의 핵계획과정에 포함시키고 이들 동맹국에 미국의 핵무기 전력에 관한 구체적 정책들을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 두 전직 장관의 연구는 8군단장 출신의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진다. 류 전 실장은 지난 5월 한·미협회 주관 심포지엄에서 아시아 핵계획그룹 창설을 통한 미국과 한·일·호주 등 역내 동맹국들 간 핵공유 체제가 이루어져야만 북한의 핵 위협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다는 의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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