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김건희 여사와 함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나서며 지지자들에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김건희 여사와 함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나서며 지지자들에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나쁘게 말하자면 검찰은 사마귀 같다. 눈앞에 살아있는 게 지나가면 콱 물고 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현직일 때는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내가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다들 몸을 사렸지. 그런데 이제는 끈이 떨어졌지 않나. 지금은 물어도 반격이 없을 거란 계산이 서는 거다. 민주당에 잘 보이려는 게 아니다. 물어뜯을 수 있는 순간이 왔기 때문에 무는 거다. 이제 와 민주당이 검찰을 예뻐해 줄 리도 없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에 기회를 준 것도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적폐청산이라는 작업에 쓸 만한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쓸모가 있으니 칼날을 부러뜨릴 이유가 없었던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다시 자신들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거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지난 4월 30일 검찰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를 전격 압수수색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혜택을 입은 친윤 검사들조차도 ‘조직 보위’가 아닌 개인의 생존을 위해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은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된 지 26일 만에 사저를 압수수색당했다. 

 

각자도생 나선 검찰

윤 전 대통령 사저 압수수색은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가 수사하던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사건에서 시작됐다. 전씨는 2022년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상임고문을 지냈고,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고문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검찰은 그가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받은 고가의 선물이 실제 김 여사에게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 사저 압수를 강행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참고인 신분인 김건희 여사의 개인 휴대전화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의 전면에 선 인물은 검찰 내 ‘특수통’으로 과거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던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이다. 윤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형사3부장으로 함께 근무했던 그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수사한 여파로 문재인 정부 당시 한직을 떠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 4월 25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이 내린 불기소 처분을 뒤집은 조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김 여사에게 공모나 방조 혐의를 물을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고발인인 최강욱 전 의원이 불복해 항고를 제기한 바 있다. 

더욱이 서울고검은 이례적으로 직접 재수사를 맡았는데,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던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7월 중앙지검 수사팀은 김 여사에 대해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비공개 ‘출장 조사’를 했고, 해당 사실이 이원석 전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 되면서 ‘검찰총장 패싱’ 논란까지 불거진 바 있다. 

김 여사 재수사를 맡게 된 박세현 서울고검장은 앞서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한때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었던 인물이다. 검사장 출신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던 지난해 1월 “윤석열 사단은 하나회에 비견된다”고 발언했다가 검사징계위원회에 회부되자 박 고검장(당시 대검찰청 형사부장) 등에 대해 ‘윤석열 사단’ 검사라며 징계위원 기피신청을 낸 바 있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가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은 최근 김 여사 측에 5월 14일 검찰청사로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라는 내용의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김 여사는 조기 대선 영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는데, 일각에서는 김 여사가 추가 출석 통보에도 계속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도 검토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을 이끄는 이지형 차장검사 역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 몸담았던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윤 전 대통령 부부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한때 ‘친윤 라인’으로 꼽히던 신응석 남부지검장(건진법사 청탁 의혹)과 박세현 서울고검장(도이치 재수사 지휘), 이지형 중앙지검 차장검사(공천 개입 수사)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검찰 내부에서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 검찰 칼끝은 무조건 전 정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되면 조국혁신당이든 민주당이든 검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텐데, 살아남으려면 일단 물어야 한다”며 “지금은 ‘누가 더 빨리 윤을 때릴 것인가’ 하는 경쟁”이라고 전했다.

앞서의 변호사는 “검찰이 조직을 살리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조직을 위해 악역을 맡아줄 정도로 훌륭한 검사는 없다. 각자 생존과 출세가 중요한 거다. 문재인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검찰 조직이 전체 방향성을 설정해 정권 기조에 맞췄다기보다, 정권에 발 맞추는 일부 인물들이 있었던 거다. 검찰 내 특수 라인은 ‘박영수 라인’ ‘윤석열 라인’이라며 사람 이름을 붙였다. 결국 인적 네트워크라는 거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조국 수사로 정부와 충돌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던 이들은 다 어디 있었나. 윤 전 대통령 옆에 없었다. 그게 진짜 검찰의 모습이다.”

 

文 내려놓은 검찰개혁, 이재명은?

검찰은 정권 교체기마다 얼굴을 바꿔 왔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의 공식 지시 없이 ‘적폐청산’ 흐름에 기민하게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윤 전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었고, 지금은 ‘죽은 권력’이 됐다는 점이다.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5월 12일 10대 공약을 발표하며 ‘검찰개혁 완성’을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검찰개혁을 이번에는 끝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공약에는 수사·기소권의 완전 분리, 검사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 검사 징계 및 파면 제도 강화 등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새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유예기간’이라는 현실적 타협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공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초기에는 검찰을 적폐청산의 도구로 활용했던 만큼,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더라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 안정적으로 여론을 이끌고, 솎아낼 것은 솎아내야 한다. 초반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그 동력을 얻기 힘들다. 그때 검찰을 쓸 수 있다”며 “정권을 잡자마자 곧바로 검찰개혁을 단행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검찰을 한시적으로 활용하면서 검찰의 태도와 실질적 역할을 지켜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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