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다섯째)이 워싱턴 DC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기념촬영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다섯째)이 워싱턴 DC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기념촬영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한·미 관세협상 테이블에서 우리 정부는 ‘광우병 시위대 사진’을 활용해 미국 협상단을 설득했다.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 금지를 요구하기 위해 “미 측에 광우병 사태 당시 시위대의 사진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과거의 정치적 괴담을 협상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수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산 소고기를 개방하고, 국가 경제 지표에 지분이 더 큰 자동차 분야 등의 관세 감축을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광우병 사진 등장에 송기호 경제안보비서관의 역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송 비서관은 과거 변호사 시절 광우병 괴담의 중심에서 시민운동과 정부 해명 요구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로, 현 국가안보실에서 관세협상 및 통상·무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협상에서의 전략적 승리가 아닌, 국내 농·축산업계의 반발을 우려한 정치적 합의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이유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이었다. 한·미 양국은 협상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 금지, 특히 생후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 금지 조항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협상 이전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거부하는 국가들은 주시 대상”이라며 타국을 대상으로 소고기 수입을 압박한 바 있다. 이에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도 미국 측은 소고기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한국은 타 부문 협상 때와는 달리, 소고기 수입에 있어서는 완강히 거부 의사를 표했다.

협상 체결 이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민감성을 보여주기 위해 2008년 광우병 시위 사진을 제시했고 미국이 이를 인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측에 ‘우리나라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물량이 전 세계 1등이고 이미 미국산 소고기를 많이 먹고 있다’고 말했다”며 “국민 정서를 자극해서 불매운동이 일어날 경우가 생긴다. 미국이 소탐대실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된 민감성은 2008년 발생한 광우병 괴담 사태에 기인한다.  이는 한·미 FTA 체결 후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움직임과 맞물려 촉발됐다. 당시 MBC ‘PD수첩’은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에 걸려 있을 위험이 높다’는 취지로 보도했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이 퍼졌다. 이후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며 연일 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고, 광화문 일대는 집회로 북새통을 이뤘다. 결국 정부는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등장한 사진은 당시 시위대 수십만 명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있는 사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타결된 직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세 제로 정책인 한·미 FTA 추진 때에는 광우병 괴담으로 온 국민을 선동해서 나를 매국노라고 했다”며 “지금의 관세 15% 협상은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괴담이 얼마나 강력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이번 협상단의 전략 구성에는 과거 광우병 사태에 앞장섰던 송기호 현 경제안보비서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광우병 주장 변호사, 관세협상 실무자로  

송 비서관은 지난 6월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된 후 한 달 만인 지난 7월 국가안보실 산하 경제안보비서관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대통령실은 “국제 통상 경제 전문가로서 대미 관세 협상의 중요도를 고려해 (송 비서관을) 경제안보비서관으로 수평 보직 이동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관세협상 준비 과정에 송 비서관의 업무적 지원과 영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 비서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국제통상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나, 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 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시민 사회 관련 변론 활동에 더 집중해왔다. 

특히 송 비서관은 변호사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적극 주장한 이력이 있다. 그는 당시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비판하며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다. 2012년에는 진보 성향 언론 단체 주관으로 열린 ‘광우병 발생 관련 한국 정부의 대응과 그 문제점, 국민건강과 언론의 자유’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당시 참석자 중에는 광우병 괴담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은 MBC ‘PD수첩’ 광우병 편의 조능희 PD도 배석했다.

광우병 사태 당시 송 비서관은 “광우병에 대해 정부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문제가 되는 소가 왜 광우병에 걸렸는지 조사를 위해 소가 자란 농장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간조선은 송 비서관 측에 이번 관세협상 관련 평가를 묻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야권과 일부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아쉽다’는 평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정부가 협상 시한에 쫓겨 많은 양보를 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자동차 부문에서 경쟁력을 잃을까 우려된다”고 평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김건 의원은 “모든 협상에서는 ‘트레이드 오프’라고 하는, 하나를 희생해서 다른 하나를 살리는 방식이 있다”며 “자동차 관세를 15%로 양보한 것만큼 우리가 강하게 강조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A 국가임에도 자동차 관세에서 손해를 본 것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한 요구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권 의원은 “소고기 개방을 막기 위해  광우병 사진 등을 활용한 것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정치적 의도를 전달하는 것과 별개로 관세 측면에서 우리가 얻어낸 소득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한국경제통상학회 소속 A 교수는 “미국산 소고기는 이미 소비 여론상 거부감이 줄어든 상태”라며 “한국이 이미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이 1등이라는 사실과 소고기 개방 금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적 이미지에 의존한 협상 전략은 협상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흔들 수 있다”며 “소고기 개방 금지 요구가 실제 경제적 이익 대비 과도하게 감정에 호소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관세협상 결과를 두고 ‘광우병에 대한 공포 이미지를 다시 꺼낸 2차 선동’ ‘한우와 미국산 소고기의 상품적 특성이 달라 서로에게 피해가 없다’ 등 비판적인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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