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전작권 전환을 국방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작권 전환에 우호적일 수 있다며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작권 전환이 협상 카드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이틀 후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전작권을 전환시키겠다’고 밝히는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성급한 전작권 전환은 그 자체로 위험한 도박이다. 전작권의 본질은 ‘전시에 한미연합군을 누가 지휘하느냐’다. 현행 체계에서는 미군 4성 장군이 한미연합사령관을 맡고 있고, 한국군 장성이 부사령관 역할을 한다. 이 구조에서는 전시에 미군 출신 사령관의 지시하에 미국의 핵잠수함과 전략폭격기 같은 전략자산이 자연스럽게 연동될 수 있다.
물론 실제 사용 여부는 미국의 정치적 결정이며, 100%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최소한 ‘핵자산 전개 메커니즘’만큼은 상당 부분 보장되는 셈이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군 사령관 체계로 전환되면 미국 전략자산의 작전지휘는 미국 전략사령부나 인도·태평양사령부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한·미가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핵우산과 같은 민감한 자산에 대해서는 우리 군의 접근권이 사실상 제한되는 것이다.
또한 실전 경험이 적은 한국군이 세계 최강의 미군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미국은 지난 100년간 동맹국과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작전권을 넘긴 적이 없다. 오히려 2차대전 이후 나토, 한미연합사, 걸프전 다국적군, 이라크전 연합군, 아프가니스탄 다국적군 사령부는 모두 미국의 지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호의적”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미국이 한발 빼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 내 반국제주의 기류와 맞물리면 ‘이제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 힘을 얻게 되어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논리가 강화된다. 당장의 미군 철수가 아니더라도 철수 가능성만으로 군사적 억제력과 외교적 레버리지, 경제적 안정성에 상당한 타격이 올 수 있다.
미군과 연계성 약화 가능성
물론 형식상으로는 전작권 전환이 곧바로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8년 한·미 국방당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연합사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문서상의 틀일 뿐, 실제 작전 수행에서 미군과의 연계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군이 미군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준비가 안 됐다면 전작권은 유엔사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의 전시 대비 능력이 충분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유엔사를 통해 전작권을 행사하는 방안까지 검토해 왔다. 이런 배경에서 2019년 미국이 유엔군사령부에 일본의 참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는 당시 국내에서 큰 논란을 야기했다.
사실 한·미 양국은 2014년 전작권 전환을 ‘조건에 기초한’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연합방위 주도 능력 △북한 핵·WMD 위협에 대한 초기 대응 능력 △역내 안보 환경이라는 3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이 조건을 정성적으로 해석하며 미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존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심지어 방산·조선 협력을 통해 평가기준을 완화하려 한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카드로 전작권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는 국가 안보를 협상 카드로 쓰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전작권 전환 이슈를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시선 역시 복잡하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전작권 전환을 반길 것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한국이 홀로 북한을 상대하고, 미국은 더 중요한 상대인 중국을 견제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정통 관료들과 군 출신 인사들은 성급한 전작권 전환을 반대한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한 전작권 전환은 추진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한국이 독자 대북 타격능력을 보강하더라도 미군의 실전 경험과 전략자산 연계성은 쉽게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최근 발간된 보고서에서 주한미군을 체스 기물처럼 하나의 수로 두 적(중국·북한)을 동시에 견제하는 수단으로 묘사했다. 전작권 전환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한·미 동맹 결속의 약화로 이어질 경우, 이런 구상이 약화된다.
전반적인 지역 역학도 주시해야 한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일본이 서태평양 지역의 비상상황 시 선두에 설 것이라며, 일본 중심의 지역 안보 네트워크를 공식화했다. 동북아 안보의 무게 중심이 일본으로 굳어지고 있다. 전작권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마이웨이’로 간다면, 향후 미·일 안보 당국자들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를 한국 없이 논의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원시어터 구상’으로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취급하고 있다. 해당 논의에서 한국 측의 참여는 없었다. 한국 정부의 소위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이 전작권 전환과 겹쳐진다면,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급감할 수 있다.
중국의 시각은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줄어들고, 한·미 간 통합된 국방 체제가 약화되는 것이 반가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이 한국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들면 중국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미국은 한국의 반격을 제어했다. 이때 미국 측이 전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부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있었다. 결국 전작권을 받은 한국이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독자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중국 정부는 전반적으로 한·미 동맹의 결속 약화를 가장 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작권을 전환받은 진보 정부가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중국 유화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중국 입장에서 금상첨화일 것이다.
일본은 전작권 전환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반미·반일 독자노선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대북 억제력이 약화되면 일본 안보에도 직접적인 부담이 생긴다.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저하되면 미국 관점에서 일본의 상대적 중요성이 높아지겠으나, 한·미 연합방위태세 약화는 일본에도 악재다. 전작권 전환이 대북억제를 약화시켜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면 일본의 안보에도 타격이 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또한 겨누고 있다.
성급한 전환보다 한·미동맹 방향성 고민해야
특히 우리 외교가 스스로 전략적 모호성을 키우는 지금, 전작권 전환은 더욱 위험한 선택이 된다. 나토 회의 대참, 자주파 인사 기용, 중국 전승절 참석 검토 등 일련의 행보는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작권 전환까지 서두른다면 이후 한국의 외교 방향은 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소위 자주파 인사들은 전작권 전환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제한하려 한다. 이때 필수적인 독자적 자율성을 넘어 한·미 동맹이 근본적으로 약화된다면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악재가 된다.
지금은 성급한 전작권 전환에 외교적·정치적 자산을 쏟는 대신 한·미 동맹 전반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한국이 과거처럼 북한 위협만 강조하며 안보 논의에서 소극적 태도를 지속하면, 미국 역시 “그럼 우리는 중국만 보겠다”는 태도로 나올 수 있다. 결국 한국이 미국의 고민인 대만 문제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호응할 때, 미국도 한국 안보에 대한 협력을 유지할 유인이 생긴다. 동맹 안에서 우리의 역할 분담을 선제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방위분담금 이슈와 전작권 전환을 중심으로 한·미 관계를 자존심 대결로 몰고 가면 위험하다. 무엇보다 전쟁을 막는 가장 좋은 전략은 압도적 전력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전작권 조기 전환을 통해 굳이 북한에 여지를 줄 이유가 없다. ‘전작권 전환’ 같은 이슈야말로 감성이나 명분이 아닌 ‘국익’과 ‘실리’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리는 강력한 억제력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