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밍이 절묘하다. BTS가 완전체 복귀라는 날개를 펼치려는 순간, 하이브에 전례 없는 리스크가 터졌다. 역대 최고 주가 열기에는 ‘재계 저승사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증권가의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 전망은 ‘오너 리스크’에 발목을 잡혔다. 하이브의 선택에 한국 엔터산업의 운명이 달렸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20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가 ‘BTS노믹스’의 천문학적 가치를 위태롭게 만든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단기적 사익을 위해 장기적 신뢰와 산업 기반을 훼손하는 선택은 기업가의 윤리뿐 아니라 경제적·문화적 손실 면에서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2026년 봄’ 방탄소년단이 완전체로 컴백한다. 긴 ‘군백기’를 깨고 신보 발매와 함께 대규모 월드투어를 재개한다는 소식이다. 하이브에 따르면 최근 팬콘서트를 마무리한 진을 제외한 RM·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은 모두 미국에 머물며 새 앨범 작업과 월드투어 준비에 돌입했다. 전 세계 ‘아미(ARMY)’는 이미 축제 분위기다. 지난 6월 10일 RM과 뷔의 전역을 기념해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 모인 팬은 1500명이 넘었다. 특히 미국, 일본, 브라질 등지에서 날아온 팬들은 글로벌 팬덤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하이브 주가는 7월 2일 32만3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호재는 또 있었다. 하이브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7057억원, 659억원을 거뒀는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10%, 29%가량 상승한 수준이다. BTS 공백에도 진과 제이홉의 솔로 팬투어, 세븐틴의 일본 팬미팅,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르세라핌의 월드투어가 흥행한 결과다. 하이브의 2025년 매출은 전년 대비 16.1% 증가한 2조6200억원, 영업이익은 15.2% 늘어난 21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긍정적인 흐름은 증권가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증권은 지난 7월 21일 ‘K-POP에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보고서에서 “BTS 완전체에 대한 시장 주목도는 상당하며, IP 활용 플랫폼 위버스의 MAU 수치도 유의미하게 개선 중”이라고 분석했다. 또 게펜 레코드와 협업해 데뷔시킨 글로벌 걸그룹 ‘KATSEYE’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100에 두 곡이나 안착시켰고, 11월 북미에서 첫 단독 투어를 시작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의 밴드 선발 오디션 ‘파세 아 라 파마(Pase a la Fama)’ 방영과 8월 라틴 틴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점도 기대 요인으로 꼽혔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 2개 팀 투입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이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전례 없는 사법리스크와 마주했다. 지난 7월 말 서울국세청은 조사4국 2개 팀을 하이브 본사에 투입했다. 하이브가 2022년 정기세무조사로 수십억원대 추징을 받은 지 겨우 3년 만이다. 국세청은 연수익 2000만원 이상 기업은 5년마다 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탈세액이 크거나 해외 탈세 혐의, 대기업의 불법 행위 등에는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다.
국세청 조사4국은 바로 이런 세무조사를 위한 특수조직이다. 통상 비정기 세무조사에 1개 팀이 배정되는 것과 달리 무려 2개 팀이 동원된 점도 이례적이다. 그래서 시장에선 이번 조사를 단순 점검이 아닌 특정 혐의 포착의 신호로 해석한다. 하이브는 대응을 위해 김·장 법률사무소를 세무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사실 하이브는 2022년에도 정기세무조사로 수십억원대 추징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주가조작, 탈세, 불공정 내부거래 의혹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사안의 중대성이 거론된다.
오너 리스크도 터졌다. 증권선물위원회·금융당국은 방시혁 의장이 하이브 상장 전 투자자들에게 IPO 계획이 없다고 알린 뒤, 측근이 설립한 사모펀드를 통해 지분을 매각해 수익을 취했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 고발(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조치를 취했다. 금융당국은 상장 과정에서 약 2000억원대의 부당 이득이 발생한 정황을 문제 삼았다. 방 의장은 관련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오너 리스크는 기업 신뢰성에 직결되는 사안이라 파장이 크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철퇴’를 내리겠다고 강조한 만큼 방 의장이 ‘1호’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BTS는 ‘BTS노믹스’란 단어처럼 이미 단순한 아이돌이 아닌 하나의 경제적 자산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콘서트 1회당 경제적 파급효과가 최대 약 1조2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BTS의 연평균 생산유발효과를 약 4조1400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런 수치는 BTS의 활동이 단일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와 문화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을 보여준다.
때문에 하이브 앞에 놓인 사법리스크는 단순한 ‘성장통’이 아닌, ‘K팝 산업의 신뢰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문제’로 거론된다. K팝 산업의 대표 주자인 하이브의 불투명한 회계나 불공정 거래가 확인된다면, 피해는 K팝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해외 투자자의 신뢰 이탈, 공연·투어 계약의 재협상, 스폰서십 축소 등은 산업 전반의 성장 모멘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일본의 한 대형 연예기획사가 내부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글로벌 음반사와 계약이 1년 가까이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북미에서는 유명 팝스타의 전 매니지먼트사가 세금 문제로 피소되면서 월드투어 일정이 취소되고, 티켓 환불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경우도 있다.
K팝의 해외 시장 의존도가 커진 지금, 사태가 장기화되면 해외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팬덤과 스폰서의 ‘심리적 거리’를 벌릴 수 있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한 번 터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며, 그 사이 시장의 중심이 다른 경쟁자로 이동할 위험이 크다.
하이브 앞에 놓인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단기적으론 법적 문제를 신속히 해소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BTS 이후의 아티스트와 IP 포트폴리오를 입증해야 하는 일이다. 하이브 전체 매출에서 BTS 의존도는 한때 95%까지 치솟았다. 2023년 한 해 동안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벌어들인 뉴진스 자리는 여전히 ‘공백’이다.
시장 신뢰 회복 과제
높은 내부거래 비중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하이브의 내부거래 비중이 약 33.9%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는 동종 산업군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공정위는 오래전부터 하이브에 내부거래·사익편취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해 왔다.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외부 투자자나 시장 신뢰 면에서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결국 하이브가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만일 하이브가 이번 위기를 제대로 돌파한다면 ‘The best moment is yet to come(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란 BTS의 가사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BTS로 쌓아올린 콘텐츠 제국의 불꽃은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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