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만 16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2년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만 16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조직으로서 역할도 수행한다. 정당법을 비롯한 정치관계법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이렇게 설립된 정당이 민주적인 조직을 형성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정당법이 포함하고 있는 규정들은 오히려 국민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정당 설립도 어렵게 하는 등 정당 체제의 제도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우리의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 정당법 개정을 통한 정당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정당법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현행 정당법은 공식적인 정당으로 등록하기 위한 조건으로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 시·도당을 두어야 하며, 이들 각각의 시·도당에는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최초 정당법은 제3공화국 헌법에 따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1962년 12월 31일 제정됐다. 당시 정당법은 ‘건전한 정당정치의 구현을 위하여 정당설립의 자유, 복수정당의 보장,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의 요구, 정당조직의 범위, 정당에 대한 국가의 보호,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추천제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부합되도록 건전한 복수정당의 보장과 군소정당의 난립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되었다.

이후 정당법은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4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법안 내용만을 보면 1962년 제정과 1969년 제1차 개정을 통해 정당의 설립요건과 절차를 강화하였으나, 1972년과 1973년, 1980년 개정은 오히려 당원수, 정당 설립요건이나 절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확실한 집권당이 없었던 제1·2대 국회의원 총선을 제외하고는 40여년간 권위주의 체제 내 여당의 확고한 우위성 보장의 근원 중 하나가 정당법과 같은 제도적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 정당정치의 권력지형은 단순히 높은 득표율에 의해 우월적 여당 체제가 형성되어 온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필요에 의해 법률의 개정·폐지·제정을 거듭하고 본래의 의도에서 어긋난 변형된 형태의 선거제도를 집권세력이 도입함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다. 이처럼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의 정당법은 집권세력 주변에 여당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방편의 일부였다. 건전한 정당 체제의 육성과 군소정당 난립 방지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정당법 제정 및 개정은 실제로 혁신정당의 출현을 저지하는 도구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을 위협하는 보수 야당마저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개혁의 일부로 정당법은 꾸준히 개정과정을 거쳐왔다. 그 개정 방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전과 후로 나뉜다. 1997년 이전까지 정당개혁은 정당 설립요건을 완화하고 당원 가입자격과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즉 정당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당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1997년 이후 정당개혁은 정당 운영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정당 유급 사무직원 수를 제한하고 당비를 대리 납부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당내 경선 과정에서 매수행위를 금지하고 정당 조직구조 개선을 위해 읍·면·동에 두었던 당 연락소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정당법 개정에 포함되었다.

 

정당법이 지역조직화 금지

2004년 정당법 개정은 지구당 폐지, 정당 유급 사무직원 수 감축, 정책연구소 설치, 당내 경선 선관위 위탁 등의 내용들을 포함하는 등 확연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당시 정당들은 ‘돈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받아온 소위 ‘고비용 저효율’ 정당구조의 개선을 위해 지구당 제도를 폐지했다.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더욱이 5개 이상 시·도당을 갖도록 함으로써 전국정당만을 정당으로 인정한 것이다. 2010년 정당법 개정도 정당 설립요건을 더욱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정당 설립을 위한 발기인 수를 중앙당은 기존의 20인 이상에서 200인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시·도당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10인 이상에서 100인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현행 정당법은 중앙당과 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모든 행정구역 수준에서 당원협의회의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조직 활동을 위한 사무소를 둘 수 없게 되어 그 활동의 자유를 제한한다. 지구당이 폐지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당원협의회라는 부분 대체 조직을 부활시켰다는 것은 지구당 폐지라는 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정당들이 당시 현 정당법, 즉 특히 시·도당 이하 수준의 정당조직의 금지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당법 재개정에 기본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정당법을 통해 정당의 지역조직화를 금지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정당법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도 정당은 ‘상당한 기간 계속해서’ ‘상당한 지역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정당 등록의 기준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판결은 정당의 제도화 개념과도 이어져 다수의 정당이 난립함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불안정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지난 30여년 동안 정당들의 이합집산으로 정당 체제의 제도화 수준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당 체제의 제도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정당의 조직구성을 들 수 있다. 정당은 당원 혹은 지도자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사적 조직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공유된 정당의 이익이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이미지가 지지자들 사이에 광범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선거를 비롯한 정치과정에서 정당이 특정 정치지도자나 파벌의 정치적 도구로 작동한다면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당 체제의 제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당법 개선을 통해 평등하고 경쟁적인 정당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개별 정당은 내부적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정착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 정당의 당내 민주화는 국가의 민주주의 공고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집권여당의 당내 의사결정이나 후보자 선출 등의 내적 제도들이 민주적이지 못하면, 여당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의 운영방식도 민주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당의 민주화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자치기관인 시·군·구에도 지구당을 두어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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