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도 아는 게 없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난 8월 20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의 청도대남병원 장례식장. 전날 무궁화호 열차 사고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사망자의 친척동생이라고 밝힌 A씨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입을 연 A씨는 “(사망 소식)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며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알지 못해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한 뒤 자리를 떴다.
사고 후 급히 마련된 빈소에는 울음소리 대신 적막이 감돌았다. 복도 한편에는 마스크를 쓴 유족이 조용히 앉아 있었고, 빈소를 나선 이들은 말없이 눈물을 훔치거나 허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 주차장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한 유족은 복도 한쪽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인파가 늘어난 저녁 시간에도 빈소 안에서는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사고는 지난 8월 19일 오전 10시52분께 발생했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의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선로에서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역으로 향하던 하행선 무궁화호 열차가 점검 작업을 하던 근로자 7명을 덮쳤다. 당시 사고 근로자들은 최근 폭우로 생긴 경부선 남성현역~청도역 구간의 비탈면 구조물을 맨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작업 승인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나 19일 오전 10시45분께 선로 주변으로 진입한 지 불과 7분 만에 뒤에서 달려오던 무궁화호 열차에 치이고 말았다.
이 중 근로자 이모(37)씨와 조모(30)씨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부상자 5명은 경주와 경산, 안동 등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로 숨진 이씨는 외동아들, 조씨는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고를 당한 7명 가운데 1명은 원청업체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6명은 구조물 안전점검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작업자 이동방향은 어디?
지난 8월 20일 오후 경찰과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이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사고 원인은 파악되지 않는다. 사망원인을 모르는 유족들 역시 허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좀 알려달라’고 입을 모았다. 유가족들의 지인 B씨는 “이번 사고는 무조건 철도공사(코레일) 잘못”이라며 “작업 환경 시스템을 얼마나 관리를 안 했으면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청도역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나”라고 성토했다. 빈소를 찾은 공공운수노조 관계자 C씨는 “희생자들의 아버지들 사이에서도 사망원인에 대한 생각이 일치되지가 않았다”며 “조사와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사망자 2명의 발인도 본래 예정일인 8월 21일보다 늦어졌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부검 절차를 거쳐 명확한 사고 규명이 이루어져야 정상적인 장례 절차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한 분은 22일에 발인을 진행하고 또 다른 한 분은 조사 결과가 더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발인 날짜를 미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일단 코레일 측은 “유가족과 부상자의 구호와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지만, 사고 원인을 두고서는 여러 말들이 나온다. 코레일 직원 박모씨는 “사고 당시 해당 근로자들은 열차가 다니는 중간에 보수 작업을 해야 하는 ‘상례작업’ 과정 중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상례작업 자체가 위험성이 높고 과거 밀양역 사망사고도 상례작업 중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다만 박씨는 “사고 책임 주체는 근원적으로 코레일 측에 있는 것이 맞다”며 “코레일 시설사업소에서 보수 작업 계획을 짜고 이에 대한 작업을 역에서 승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설사업소 측이 확실하게 일처리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경력 25년의 한 코레일 현직 기관사 김모씨는 “회사(코레일) 내부에서도 사고 상황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작업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는지,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는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사고를 당한 근무자들이 본래 규정대로 열차를 바라보면서 이동하지 않고 등을 지고 이동한 것으로 들었다”며 “인솔을 담당한 (코레일 시설사업소 소속) 직원 한 명이 근무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해당 규정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전기열차의 경우 디젤열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음이 적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이때 작업 현장 인솔자는 열차가 다가오는 방향을 마주보며 이동하도록 지시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코레일 측의 귀책사유가 될 수 있어 상당한 논란도 예상된다.
여권, 한문희 코레일 사장 책임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산재 사고’를 강조하는 와중에 터진 이번 사고에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전날부터 이어졌다. 19일 오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사고 수습 지원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는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등도 동행했다. 정 대표는 “안타까운 사고가 또 발생했다”며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을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가 있었는데, 이런 일이 또 발생해 국민들께 송구스럽고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 철도기관사 출신으로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다음 날인 20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제가 너무 부족했다”며 “그간 안전한 일터를 위해 나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어제 철도 사고를 막지 못해 국민들께 너무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산재사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의 이 같은 언급에 강도 높은 진상 조사와 책임자 엄벌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청업체라고 할 수 있는 코레일의 한문희 사장은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한국노총 산별노조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하청업체 관리 미흡과 안전 조치가 부실했던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한문희 코레일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지 하루 만이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SPC,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DL건설(옛 대림건설) 등 민간기업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때 가혹하리만큼 책임을 추궁했던 사례를 들어 코레일의 오너 격인 정부를 강도 높게 성토하고 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에 엄벌주의로 기업 바지사장이 아니라 오너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었다”며 “코레일은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했으니 이번 사고의 책임자는 코레일 사장이 아니고 정부 수장인 이 대통령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경철 송원대 철도운전경영학과 교수는 “외주업체 직원들은 현장에 나가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안전사항에 대한 지시를 받았어도 본인 업무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며 “열차 감시를 위한 안전직원 1명이 전담해서 더 나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현장 안전지침 이수 여부, 장비 노후화 여부를 재점검해야 한다”며 “방지할 수 있는 인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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