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 서울 종로구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가 주간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20일 서울 종로구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가 주간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본 수도 도쿄를 포함한 간토(關東)지방 남부를 강타했다. 재난의 공포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번졌고, 일본 군·경과 민간 자경단이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최소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죽었다. 올해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102주기가 되는 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사실 관계를 파악할 공식기록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공식 사과나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주간조선과 만난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는 오는 8·23 한·일 정상회담에서 간토대학살 문제가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피켓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영리단체 시민모임 독립은 2021년 출범 이후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해 8월부터 5년째 매년 8월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 또한 “일절 무반응”이라고 한다. 

1923년 9월 10일자 조선일보 지면에는 “관동대지진으로 日本 내 朝鮮人이 惡謀를 기도하는 것가치 思惟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우리는 이를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발표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검열로 인해 많은 글자가 훼손되어 있다. photo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23년 9월 10일자 조선일보 지면에는 “관동대지진으로 日本 내 朝鮮人이 惡謀를 기도하는 것가치 思惟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우리는 이를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발표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검열로 인해 많은 글자가 훼손되어 있다. photo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조선일보, 1923년 日 검열 뚫고 최초 보도

최근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는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국민 통합을 지향하는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함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진상규명’을 포함시켰다. 해당 과제에는 진상규명의 법적 근거 마련 및 실효성 확보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겠단 내용이 명시돼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원 신분으로 국회에서 열린 간토대학살 사진전을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당시 이 대통령이 사진전을 찾아 ‘민주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피해자와 유족이 아직 살아계신 만큼 관련 법을 신속히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히로시마 원폭 피해 문제에 평화의 메시지를 내셨던 것처럼, 이번 회담에서 이시바 총리를 직접 만나 간토대학살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간토대학살의 진상을 기억하고 규명하려는 노력은 한·일 시민사회와 언론보도를 통해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1923년 사건 직후 검열을 뚫고, 철저한 조사와 진상 발표를 촉구한 최초 보도를 냈다. 이후 90주기(2013년), 100주기(2023년)에도 사설과 기고문 등을 통해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일본에서는 1973년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세워진 뒤, 해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추도식을 진행했다.

박 대표는 일본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된 간토대학살 추도 운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독립 회원인 무라야마 도시오 선생은 지난 100주기 집회 때 ‘이 역사를 기억하는 건 우리 시민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그 ‘시민’의 의미에는 국적이 없다. 한국, 일본 공동책임이란 거다. 일본 시민운동가 분들이 굉장히 헌신적이다. 추도식에 참가하려면 1인당 1000엔씩, 그러니까 우리돈 1만원 정도씩을 입장료로 내야 한다. 집회를 조직하는 주최인 시민단체에 돈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10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모인다.”

이 같은 움직임에 따라 2010년대부터는 국내에서도 종교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관련 심포지엄과 문화제 등 대규모 추도행사가 점차 공적 영역으로 확장됐다. 2023년에는 시민모임 독립이 시민들로부터 펀딩을 받아 제작된 ‘1923 간토대학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고,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천안시에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 역사관’을 설립했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진상규명과 책임 촉구를 위한 일본 내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일 시민사회 연대의 사례를 묻자, 박 대표는 “니시자키 마사오 선생은 조선인 학살이 집중적으로 벌어진 아라카와(荒川) 강변에 ‘봉선화(호센카)’라는 시민단체를 세우고, 40년 넘게 목격자 증언 수집과 현장 조사, 진상규명 촉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가 간토대학살 진상공개·공식사과를 요청하는 시위 피켓을 들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가 간토대학살 진상공개·공식사과를 요청하는 시위 피켓을 들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日 참정당 유세 현장에 부활한 ‘15엔 50전’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극우 정치인들의 혐한적 언행은 오히려 더 노골화되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일본의 참의원 선거 극우 참정당 유세 현장에서 간토대학살에서 쓰인 ‘조선인 감별법’이 재등장했다”고 했다. “참정당 지지자가 참정당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조선인 아니냐’며 ‘15엔 50전’을 발음해보라고 했단다. 102년 전 발음이 부정확한 조선인을 연행해 구금하고 살인할 때 쓰던 바로 그 방법이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매년 9월 1일 추도식에 보내오던 조전(弔電)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017년 취임한 이후로 중단된 상태다. 박 대표는 “그전까지는 극우로 분류되는 인물이더라도, 도쿄도지사라면 추모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왔었다. 최근에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백한 기록과 증언, 반복된 국제사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걸까. 박 대표는 간토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부인과 침묵의 배경에는 ‘천황제(天皇制)’라는 본질적·구조적 민감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천황의 칙령에 의해 계엄령이 발동됐고, 학살은 계엄령하에서 군·경과 민간이 함께 자행했다. 결국 천황이 책임져야 할 사건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 공산당 같은 경우에도 과거 강령에서 ‘천황제를 폐지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견지했으나, 이후 포기하고 당 강령에서 해당 표현을 삭제했다. 일본 정치권 내에서도 천황제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 것은 여전히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진상규명 문제가 일본 사회의 본질과 연결된 어려운 사안이기에, 한국 정치권의 보다 명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국내 정치권의 논의는 2014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이 2014년 처음 발의됐고, 이후 2023년에는 유족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는 점이 강조되며 재발의됐지만, 모두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윤건영 의원이 다시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건 단순히 외교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진실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안이다 보니, 외교부 차원에서 일본 정부와 얘기한 적이 전혀 없다. 계속해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동안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한 건 2023년 김진표 국회의장뿐이었다. 결국은 민주당, 행정부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오는 9월 1일 추모일에도 대통령실이 메시지를 내야 한다.”

시민모임 독립은 이외에도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및 서훈 촉구 활동, 조선학교 차별 반대 운동 등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 다양한 시민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박 대표는 2004년부터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활동에 주력했다. 의열단장 김원봉, 조선어학회 사건 주역 이극로, 동북항일연군의 허형식 장군, 광주학생운동 주역 장재성 등이 여전히 서훈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북한과 관련된 이력으로 인해 배제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컨대 김일성과 같은 동북항일연군 출신이라는 이유 등이다.

박 대표는 “독립운동 서훈의 판단 기준이 되는 시점을 논의하려 한다. 저희는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해서 서훈을 주자는 입장이다. 이후에 이승만 암살 기도 사건에 연루돼 형을 살았더라도, 8월 15일 전의 공로에 대해서는 인정하자는 거다. 이분들은 이미 한국 역사에서 영웅이다. 고향에 기념비와 기념관까지 세워져 있을 정도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서훈은 아직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는 우리가 체제를 넘어 독립운동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선학교 차별 반대 운동 또한 간토대학살 시위와 병행해 매주 금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선학교는 광복 이후 재일동포들이 조국의 언어, 문화 등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민족학교로, 일본 정부의 제도적 차별을 겪고 있다. 특히 2010년 일본의 고교무상화 제도 시행 당시 조선학교는 북·일 간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배제됐고, 이후 15년째 급식비 등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서울에도 일본인학교가 있다. 당연히 우리 정부는 부지 등 공적 지원을 차별 없이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만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해 외교적 항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2025년도 예산 처리 과정에서 지원금 추가 등 무상화 정책을 더 확대했는데, 조선학교는 여전히 배제 대상이었다.

시민모임 독립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다. 박 대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1919년 3·1운동 등 한국 시민운동은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 중국, 북한 그 어디도 이토록 ‘변화’를 이끈 시민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다. 한국과 시민운동이 지금껏 쌓아온 성취를 긍정하고, 그 성취를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랐던 건 분단이 아닌 평화였고, 지금 우리도 그 방향을 따라야 한다. 저 역시 아들을 군대에 보냈던 부모이기도 하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통일까지는 아직 먼 얘기겠지만, 이런 조바심 없이 살아가는 세상, 평화로운 동아시아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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