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9일 통일부는 “올해 ‘북한인권보고서’를 생산은 하지만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뀌자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부터 매년 보고서로 만들어 왔다. 비공개로 제작돼 국회 등에 보고하던 보고서를 윤석열 정부 때인 2023~2024년에 공개 발간했다가 이번에 다시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통일부는 “2024년 발간 후 새롭게 수집된 진술이 많지 않다”며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가, 통일부가 법이 정한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자 비공개로 입장을 정했다. 정부 성향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공개’,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비공개’로 바뀌는 촌극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9일 서울 종로구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만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은 애초에 인권보고서 발간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진보·보수 정권에 따라 정책이 왔다갔다 할 것을 예상하고 “북한 인권은 교류 협력을 주 업무로 하는 통일부에 껄끄러운 주제”라며 “북한 인권 기록 보존은 남북 관계의 영향을 덜 받는 법무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북한 인권 문제가 보수·진보 싸움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현재 진영 간 논쟁이 치열한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관련,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민관 협동형 방식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 통일부가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관련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통일부는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지 않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이 ‘발간은 의무사항’이라고 주장하자, 통일부는 ‘발간하지 않는다고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비공개로 발간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북한인권법에 ‘조사·보관·발간’ 의무가 명시되어 있어, 보고서를 내지 않으려 하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공개 보고서는 홈페이지에 올리고 국제사회에 배포하지만, 비공개 보고서는 만든 사람과 일부 국가기관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어 실질적 의미가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공개 보고서로 전환했지만, 이번 발표는 다시 비공개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된다.”
- 북한 인권 기록·조사는 원래 통일부의 업무가 아니었나. “북한 인권 기록·조사는 2016년 북한인권법 통과 이전에는 민간단체에서 해오던 일이었다.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가 만들어지면서 통일부가 조사 기능을 맡게 되었고, 민간단체는 제한적인 조사를 하기로 협의하여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는 하나원 출입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민간단체 조사를 중단시키고 조사를 독점하려 했다. 이로 인해 민간단체는 3년간 조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이 실제로 북한 인권 개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활동은 북한 인권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문이나 가혹행위의 수준이 현저히 낮아졌고, 북한도 비난을 피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공개 처형은 거의 없어졌고, 비공개 처형이 늘었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의 식량 사정도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많고 통제가 엄격해 이동이 쉽지 않다.”
- 정권 교체에 따라 통일부의 북한 인권 정책이 바뀌는 것을 어떻게 보나. “보수·진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성과를 내기 어렵다. 북한 인권은 교류 협력을 주 업무로 하는 통일부에 껄끄러운 주제다. 탈북자 업무도 원래 보건복지부에서 이관받은 것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논란을 막기 위해 북한 인권 기록 보존을 법무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는 남북 관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 통일부와 민간단체의 북한 인권 조사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민간단체는 단체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한다. 인권 조사 및 분석을 위한 국제사회의 표준화된 프로그램에 따라, 사건과 인물에 대한 200개 이상의 항목을 조사하여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한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15만건 이상의 자료가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가해자 책임 규명, 피해자 구제, 정책 개발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반면 통일부는 자체적인 조사 방식을 가지고 있으나, 공개한 적이 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통일부는 법이 생긴 이후 민간단체의 조사 인원수를 제한하며 통제를 가하기도 했다.”
- 최근 탈북자 수가 감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탈북자 수는 연간 200명 정도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이는 국경 경계 강화, 중국 내 이동의 어려움, 그리고 탈북할 필요성이 줄어든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얼굴 인식, 교통 통제 등 단속이 심해 신분증이 없는 탈북자가 움직이기 어렵다. 따라서 최근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로, 최근 북한의 상황을 경험한 사람은 매우 적다.”
- 탈북자 증언이 과장될 가능성은 없을까. “매우 정교하게 조사한다. 몇천 명이 동일하게 증언하는 내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개인적인 기억의 오류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일부 있을 수는 있으나, 북한 인권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증언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북한인권재단 출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인권재단 출범은 현재 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하지 않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정당도 다수 의석을 가졌을 때 적극적으로 법률을 개정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재단은 사무실 계약까지 해지되어 직원이 아무도 없는 상태이며, 이는 법에 정해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전형적인 직무 유기다. 인권재단이 설립되어도 또다시 업무를 둘러싼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민관 협동형 방식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