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아춘 서울 종로구 대명1길 18
이상하다. 배달앱 평점은 다들 5점 만점에 ‘4.9’나 ‘5.0’인데, 시켜보면 이게 만점의 맛인지 긴가민가하다. 정말로 많은 한국인들이 요즘 시달리는 것이 ‘중국집의 실종’이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찹쌀탕수육은 쫀득했지만 고기는 적고 튀김옷만 두꺼웠다. 그래도 우리가 아는 근본 탕수육의 귀여운 변종 같았다. 볶지도 않은 맨밥에 계란부침을 올리고 짜장소스만 올려도, 끼니를 때우기에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식도 다른 음식처럼 프랜차이즈화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찾아온 배달전문업체의 시대는 프랜차이즈화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를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자동화된 웍이나 튀김기에 밥을 볶고 고기를 튀기고, 미리 일회용기에 포장해둔 뒤 주문이 들어오면 전자레인지에 데워 나가는 집도 적지 않다고 한다.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중식당에서 일하는 것은 중노동이다. 기술도 기술이거나와 웍질에 손목을 ‘털려가며’ 하는 것이 중식인데 젊은 유입자가 적다고 한다. 지난날 중식의 부흥을 이끌던 화교(華僑)들이 은퇴하면서, 비슷한 이유로 가업을 물려받지 않는 자식들이 많아 그대로 장사를 접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기성품에 간단한 조리만 거쳐 손님 상에 오르는 곳들도 많다.
추억은 또 미화되는 것인가. 스포츠머리에 금목걸이를 건 사장님이 항상 불콰한 얼굴로 주문을 받는 중국집은 믿음직했다. 바삭한 탕수육, 기름에 제대로 볶아 그을린 자국이 밥알에 선명한 볶음밥, 그 위에 튀기다시피 올려낸 반숙 프라이, 무심하게 퍼담은 짬뽕 국물 서비스. 가끔 주방장이 자리를 비우면 사장님이 러닝셔츠를 입고 되는 대로 하던 웍질. 이런 것들은 이제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후줄근한 추억이야 2000년대 너머로 날려보낸다고 해도,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는 중식 노포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동네의 ‘숨은 고수’들도 보통이 아니었겠지만 역시 이곳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진아춘은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화교 3세인 형원호 사장의 할아버지가 1925년 개업해 이어져 오는 3대째 가게. 형 사장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을 나와 가업을 잇기로 한 것이 1983년이니 다른 곳과는 비할 수가 없는 ‘근본’인 것이다. 이날 형 사장을 만나 나눈 이야기 속에는 모두 ‘근거 있는 자부심’들이 묻어 있었다.
그가 무심히 얘기하던 정재계 인사들과의 에피소드를 지면에 풀어내고 싶은 욕심을 참기 어렵지만, 근본 가운데 가장 핵심일 ‘맛’에 대한 원칙부터 적어야겠다. 트렌드를 좇지 않고 본토의 맛을 유지하는 것,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을 유지하는 것. ‘미원’을 들이붓는 다른 식당에 비해 조미료를 훨씬 덜 쓰고, 고운 국산 고춧가루를 쓰는 것도 자부심이란다. 느끼할 것 같은 중식이 그처럼 건강하니 인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매료됐다고 한다. 주방장을 외부에서 고용한 것은 한 번뿐이고, 무조건 내부에서 육성해 요리사를 키웠다. 그가 키운 주방장만 해도 5명.
교수님들이 단골이라고, 학생들은 잘 오지 않는다고 하던 형 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풋풋한 얼굴의 대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스스로도 못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스승이 가는 곳에 근본이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해루 서울 종로구 종로26길 18
40년이 넘은 업력의 옛날 중국집 그 자체. 영화에 나오는 거창한 객잔까지는 아니어도, 어쩐지 아늑한 누런 조명이 감도는 공간이 소담스럽다. 고급 술을 먹어도 좋지만, 아마도 한국인 체질에는 화끈한 ‘빼갈’이 좋을 것이다. 이과두주에 어울리는 요리들이 이곳의 특기다. 주방에서 화끈하게 볶아낸 탕수육은 바삭하기로는 종로통에서 제일이다. 여간 양이 많은 게 아닌 깐풍기도 먹어볼 만하다. 에이스 메뉴 격인 간짜장도 일품이고, 직접 빚은 군만두도 반드시 먹어야 할 메뉴. 세운상가 인근을 최근 덮치고 있는 재개발의 물결 속, 동해루에는 몇 년이 더 남아 있는지 모른다. 저녁 8시에 마감하니 주의를.

동순각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45길 14-5
시장통에 맛난 식당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서울 영등포시장에 정말이지 먹을 것으로는 없는 게 없었다는 걸 아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그런 데서 중식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인가? 당연하다. 주변 상인 수천 명 가운데 10분의1만 짜장면 생각이 나도 장사는 대박이다. 동순각은 그렇게 50년을 버텼다. 들어서면 ‘배달의민족 주문!’ 하는 알림이 아니라 그냥 전화통이 불나듯 울리는 것이 믿음직하다. 케첩을 베이스로 한 탕수육은 부먹보단 찍먹이 어울린다. 이제는 어디서도 팔지 않는 담백한 맛의 울면, 그게 그리웠던 분들은 방문하시면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등반점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52번길 43
고등학생쯤이 되니 다른 메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나이가 되면 탕수육과 짜장면, 짬뽕, 볶음밥이라는 국민 조합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치켜들기도 하는 것이다. 깐풍기라는 건 어떤 맛일까? 난자완스는, 팔보채는 또 어떤가? 마침 경기 수원에서 고등동이라는 곳은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도 그런 호기심을 해결해주고픈 아빠들이 사는 곳이었다. 요리부 라인업의 가격이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양이 많기로 유명하다. 주력 메뉴는 깐풍기, 유니짜장, 팔보채. 1970년 열어 3대째 이어가는 화상(華商)으로 수원의 대표적 중식당이다. 겨울이 되면 꽃다발을 챙겨 들고 오는 교복 차림의 아이들을 볼 수도 있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졸업식 후 짜장면’의 풍경이 살아있다는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