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이 안보여행에 나선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7월 8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이 안보여행에 나선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photo 뉴스1

북한이 눈앞에 보이는 임진각은 실향민들이 명절마다 찾아와 고향을 그리워하던 망향의 땅이다. 설날과 추석이면 임진각은 북녘 땅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는 실향민들로 가득하다. 망배단 앞에서 절을 올리고, 리본에 통일의 소망을 적어 주변 철조망에 매달곤 했다.

임진각 일대는 원래 육군 1사단 장병들의 면회 장소였다. 그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설 매점을 운영하던 장소에 임진각을 세우라고 지시했는데, 당시 사단장이 그 매점 건물을 해태제과에서 운영하는 면회소라고 설명하는 바람에 해태제과가 임진각 건립을 담당하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임진각 소유권이 경기관광공사로 넘어간 것이 2005년이니, 꽤 오랫동안 임진각은 해태제과에서 운영하던 민간 관광시설이었던 셈이다.

임진각에는 실향민들이 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내는 망배단 외에도, 1953년 1만2773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귀환할 때 건너왔던 자유의 다리, 끊어진 경의선 철교 교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분단의 상흔과 아픔을 절절이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때문에 수학여행과 안보견학지로 유명했으며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객들도 많이 찾았다. 한편에 조성된 작은 놀이동산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는 어른들로 임진각은 늘 북적였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DMZ 접경지역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문화공간들이 많이 생겨났다. 임진각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계기로 조성된 ‘평화누리공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바람개비 언덕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변화한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안보관광’이 ‘평화관광’으로 전환됐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다.

임진각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증인이 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다. 1950년 12월 31일 밤, 스물세 살의 기관사 한준기는 황해도 한포역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밤 10시경 장단역에 도착해 기관차에서 막 내리려던 순간, 느닷없이 연합군의 총격이 시작됐다. 한준기 기관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80t의 거대한 철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렇게 증기기관차는 휴전 후 비무장지대 안에 갇혀 50여년간 수풀에 묻혀 있다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경의선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발견돼 임진각으로 옮겨진 것이다. 1020개의 총탄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이 증기기관차는 전쟁의 생생한 증인이자, 70여년의 세월 동안 빛바랜 녹처럼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도 이제는 낡고 오래된 과거가 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최근에는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곤돌라가 개통돼 또 한 번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하늘에서 임진강 너머 민간인 통제구역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첨예한 분단의 현장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강과 들판이 펼쳐진 고요한 전원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강 건너 갈 수 없는 땅을 바라보기만 하던 전망대였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이 있는 여가공간으로 변모한 임진각에서, 전쟁 후 흐른 시간만큼 상처의 흔적도 조금씩 희미해져 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완전한 망각이 아닌,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되길 희망한다. 

 

주소: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48-53 (임진각관광지 평화누리주차장)

대중교통: 경의중앙선 문산역 하차 후 버스 이용 또는 임진강역 하차

김지나_ 서울대학교 연구교수·도시문화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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