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최고의 록밴드 ‘오케안 엘지(Okean Elzy)’의 리드 싱어이자 작곡가인 스뱌토슬라프 바카르추크(46)를 영상 인터뷰했다.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유엔개발프로그램 친선대사로도 활약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러시아 침공 이후에는 군에 자진 입대해 전선과 병원을 오가면서 군인과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22일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비디오 ‘UA 소 뷰티풀(UA so beautiful)’을 발표했다. 오케안 엘지가 만든 이 비디오는 팝가수 조 카커의 빅 히트곡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을 편곡한 것. 우크라이나의 명예 문화대사로도 활동한 바카르추크는 전선과 병원에서 목격한 참담한 경험을 얘기할 때는 감정에 겨워 눈물을 닦기도 했다.

 

-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큰 도시 중 하나인 드니프로에 있다. 조금 전까지 동부전선에서 군인과 경찰들을 만났다. 조국을 떠나 서방세계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도 만났다. 위험하고 두렵고 또 한심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하루였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하루의 일과가 이렇다. 가능한 한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이번에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았는가. “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소위 유명인으로서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기를 진작하면서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무기도 있고 훈련도 받았지만 직접 전선에서 싸우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 직분을 다할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조국에 봉사하고 있다. 지금 내 직분대로 하고 있는 것이 총을 들고 전선의 참호에서 싸우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무엇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가. “전쟁은 모든 것을 흑백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삶을 보다 단순하게 만든다. 돈과 평안과 명성과 대중의 지지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도록 만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친구와 조국의 안전과 안보다. 우리의 큰 목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미쳐 돌아가는 러시아의 행위를 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가 개념을 파괴하려고 작심한 것 같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내 지나간 삶보다 훨씬 단순한 삶을 경험하고 있다. 위문공연을 하기 위해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불편한 구닥다리 차를 타고 3시간이나 달려간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음식을 먹고 잠도 여인숙 같은 곳에서 밴드의 동료들과 한 방에서 잔다. 전쟁이 끝나도 다시는 과거와 같은 풍족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하기까지 하다. 난 앞으로 보다 단순하고 겸허한 삶을 살 것이다.”

‘오케안 엘지’의 공연 장면.
‘오케안 엘지’의 공연 장면.

- 음악은 전쟁에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은 물론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은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쟁의 반대어다.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에서도 깨달을 수 있듯이 음악과 예술이란 사람들을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과 정반대로 다른 나라라는 것을 상상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가 바로 그런 나라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에 저항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침공한 것은 나토의 확장이나 나라의 안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지난 30년간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를 파괴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안 됐다. 그러자 푸틴이 마침내 군사력을 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다. 모두가 큰 대가와 고통을 치르고 있다. 음악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총동원시키고 그들에게 이 침입을 막아야 한다는 개념을 깨우쳐 주고 있다는 면에서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불행하게도 무기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무기를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 전쟁으로 음악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엔 너무 이르다. 다만 오늘 처음으로 기타를 들고 군인들과 병원 환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를 방문해 노래했다. 이 인터뷰가 끝난 뒤 우크라이나의 현 사태와 함께 국민들의 저항을 목격하고 느낀 경탄스러운 감동을 노래로 작곡할 생각이다. 이 전쟁으로 내 음악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할지 지금으로선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라는 큰 스트레스를 겪고 나면 새 예술이 태어나곤 했다. 1차 대전 후 건축·문학·그림·음악 등에서 새 형태가 생성된 것이 좋은 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언젠가 새 형태의 음악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많은 음악 동료들은 벌써 이 전쟁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바치는 노래들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 경우 음악은 가슴과 영혼 속에서 발효된 뒤에야 나온다.”    

- 난민과 군인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 곡은 무엇인가. “첫째는 내 노래 중 가장 유명한 ‘오비미(Obimy)’다. 이 노래는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가수들이 나름대로 편곡해 불렀다. 다음으로는 ‘에브리싱 이즈 고잉 투 비 올라이트(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이다. 이 노래야말로 요즘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매일 들려줄 만한 곡이다.”

- 난민과 병원의 환자들을 방문한 경험이 어땠는가. “끔찍한 것도 있고 정신을 고무시켜주는 것도 있다. 키이우의 병원을 방문했을 때 부차의 폭격에서 다리 하나를 잃고 입원한 남자를 봤다. 그를 위로하려고 다리 하나만 잃었을 뿐 나머지 신체기관들로 더욱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히죽 웃더라. 그런데 그때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이 남자의 아내와 두 아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사살됐는데 그가 그 끔찍한 장면도 목격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큰 연민과 함께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들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견디고 살아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내 정신을 고무시켜주는 경험은 한 주유소에서 만난 남자에 관한 것이다. 그는 내게 자기 아내와 두 딸을 외국으로 피신시킨 뒤 자기는 싸우기 위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킨 뒤 조국으로 돌아온 남자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 외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난민이 아니라면서 전쟁이 끝나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전쟁이 지겨워서 조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군의 요청으로 피란한 것이다. 오늘 동부전선을 방문했을 때도 그곳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노약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제발 집을 두고 피란 가라고 종용했다. 그것은 군의 작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군인들이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도록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피란 갔던 국민 중 80~90%는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존심과 용기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자유국가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참혹했다. 과거에도 독립을 시도할 때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 독립이 좌절되곤 했다. 1991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세계 어느 한 구석에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한 부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연 무지했다. 우리는 항상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해왔다. 우리는 핏속에 개인주의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야 우리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다른 것은 우리나라는 수평사회이지만 그들은 황제를 지녔던 수직사회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렇게 그들과 다른 가치관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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