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전국단오제연합 주최 ‘단오, 단 하나가 되다’ 홍보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장행렬을 구경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전국단오제연합 주최 ‘단오, 단 하나가 되다’ 홍보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장행렬을 구경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방학과 휴가를 맞아 떠날 곳을 찾는 이들에게 일탈과 시원한 자극을 선사하고자 전국 각지에서는 형형색색의 축제들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여름 축제 풍경에는 흥미로운 특징들이 있다. 우선은 해변과 물을 중심으로 한 축제들이 단연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보령머드축제는 1998년 시작되어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며 매년 수십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 축제로 성장했다. 정남진 장흥 물축제는 탐진강, 장흥댐, 득량만 등 지역의 풍부한 청정 수자원을 활용해 ‘물=건강과 치유’라는 테마로 차별화된 체험을 제공한다. 한편 워터밤은 인기 K팝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대규모 물놀이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젊은 세대들에게 음악과 물이 어우러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한낮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야간시간대를 공략하는 축제들도 인기다. 포항국제불빛축제는 철강도시로서 포항의 도시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뜨거운 용광로를 상징하는 ‘불’의 이미지를 테마로 2004년 포항시민의 날을 기념해 시작됐다. 매년 초여름 밤하늘을 화려한 불꽃과 레이저쇼, 드론쇼로 수놓는다. 대구치맥페스티벌은 2013년 시작 당시에는 지역 문화공연 중심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형 가수들의 공연과 EDM 파티가 추가됐다. 현재는 매일 밤 10시를 클라이맥스로 하는 대규모 음악축제로 발전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축제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역사나 문화, 계절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보다 여름 휴가철 관광객을 잡기 위한 전략적 기획이란 것이다. 보령머드축제는 석탄산업 쇠퇴로 위기에 처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TV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고, 대구치맥페스티벌 역시 ‘치킨과 맥주’라는 대중적 음식문화를 축제화한 것이지 대구만의 고유한 전통은 아니다.

여름꽃 축제들은 더욱 명확하다. 무안의 연꽃, 태백의 해바라기, 고성의 라벤더 모두 축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대규모 재배를 시작한 것들이다. 워터밤과 같은 신생 축제는 아예 K팝과 물놀이를 결합한 상업성 짙은 이벤트로, 지역특징과는 거의 무관하다. 우리나라 여름 축제들이 전통을 계승하거나 지역 문화를 표현하기 위한 장이라기보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인 ‘라토마티나(La Tomatina)’는 1945년 여름 부뇰의 푸에블로광장에서 열린 민속축제에서 소년들이 우발적으로 시작한 싸움에서 유래됐다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 싸우면서 근처 채소 가판대의 토마토를 집어던지기 시작했고, 다음 해에도 싸움이 반복되면서 연례 행사가 됐다는 것이다. 1950년대 초 경찰이 이 ‘싸움’을 금지시켰지만 시민들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토마토를 넣은 관을 매고 ‘토마토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이기까지 하면서 이 새로운 전통을 이어나갔다. 2002년에 와서야 스페인 정부에서 라토마티나를 공식 축제로 인정했으니 축제를 만들고, 지키고, 발전시켜 나간 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의지였음이 분명하다.

 

지역 전통 살린 해외축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솔트(Sault) 라벤더 축제는 중세부터 이어진 라벤더 재배 전통을 기념하는 행사다. 12세기부터 라벤더를 재배해온 이 지역은 매년 수확기에 맞춰 축제를 열어 왔다. 라벤더 수확 시연, 증류 과정 공개, 라벤더 제품 시장 등이 펼쳐지며,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 밭을 배경으로 야외 음악회와 전통 프로방스 춤 공연도 즐길 수 있다. 합성 향료가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역 전통의 진정성에 기반을 두었던 덕분에 천연 라벤더의 가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지역 경제도 함께 살아난 것은 물론이다.

일본의 기온 마쓰리는 869년 여름철 교토에 창궐했던 전염병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역사가 1150년이 넘는다. 7월 한 달간 야마호코라는 거대한 수레 33대가 도시를 순행하는데, 이 수레는 신이 임시로 머무는 신성한 공간으로 악령과 역병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 7월은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액운과 재앙이 많은 계절로 인식돼 왔다. 때문에 야마호코 순행을 통해 도시를 정화하고 액운을 쫓아냄으로써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정성스럽게 꾸며 선보이는 야마호코는 마을의 자긍심과 결속력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북유럽 국가들은 하루에 해가 5~6시간밖에 나지 않는 긴 겨울을 보낸 후, 낮이 가장 긴 하지를 기념하는 축제인 ‘미드솜마르(Midsommar)’를 연다. 햇빛이 그리운 북유럽 사람들에게 이 시간이 특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춥고 긴 겨울을 잊고 짧은 여름의 아쉬움을 달래는 축제를 펼친다. 바이킹 시대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때문에 북유럽에서 미드솜마르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겨진다. ‘마이스통(Majstang)’은 이 축제의 중심이 되는 상징물인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15m 정도 되는 높이의 나무기둥를 자작나무 잎과 계절 꽃으로 장식한 것이다. 이 마이스통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등장하기도 했다.

 

단오제의 성공 비결

물론 우리나라에도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여름 축제가 있다. 바로 음력 5월 5일 단오다.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져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혔다. 고대 마한 시절부터 5월 파종이 끝나면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자들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를 했으며, 남자들은 씨름을 했다. 쑥떡과 수리취떡을 먹고, 부채를 나누며 더위를 물리쳤다. 이런 풍속들은 여름으로 접어드는 환절기의 질병과 액을 막는 주술적 성격과 함께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 단오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음력 4월 5일 신주 빚기부터 시작해 5월 초까지 한 달여에 걸쳐 진행되는 이 축제는 유교, 무속, 불교의 제례 의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를 띤다. 강릉단오제의 성공 비결은 지역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축제로 발전시킨 데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맥을 이어온 것은 노인과 무녀들이 소규모라도 빼놓지 않고 단오제를 치렀기 때문이다. 현재는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대규모 축제가 됐지만, 여전히 대관령 산신제,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 핵심 전통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독특한 문화 풍습이 외지인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정도의 상업화는 불가피하다. 처음부터 관광상품으로 기획된 축제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축제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것이 축제가 본래 가졌던 사명이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하며, 신과 자연에 감사하는 의례로서 말이다. 여름 축제의 계절, 화려한 볼거리와 자극적인 즐길거리 너머에 있는 축제의 진짜 의미를 한번쯤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관광 자원이 되면서도 지역 정체성을 지키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축제들이 더 번성하고, 진정한 여름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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