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훈부가 지난 7월 군 복무 중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으로 장기간 치료를 받아온 20대 여성 예비역 A씨에게 상이등급 2급을 부여했다. 정신건강 사유만으로 2급이 나온 것은 제도 도입 이후 첫 사례다. 종전까지 PTSD를 앓는 연평해전·천안함 생존 장병들조차 대부분이 상이 7급, 신체 상해도 있는 일부가 5~6급에 머물던 관행을 깬 결정이라는 평가다.
A씨는 군 복무 중 상사의 반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등으로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복합 트라우마가 생겨 극단적 선택 및 심각한 불면, 공황 발작에 시달렸다.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음’으로 분류돼 세 차례 보호 입원했고, 난치성 특수 치료를 거쳤다. 지난해 국방부 신체·정신장애 심사에서는 최하위 7급 판정을 받았으나, 방대한 임상 기록과 7시간 심리검사 결과를 첨부해 보훈부 재심을 청구하면서 판정이 뒤집혔다. 최종 판정을 받은 2급은 ‘고도 정신장애로 수시로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상태’를 의미하며, 월 최고 153만여원의 보상연금과 전액 의료비 지원, 취업·교육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PTSD·우울장애만으로 상이 ‘2급’ 인정
보훈부는 상이등급구분 결과 안내서에서 A씨를 ‘보훈보상대상자 재해부상군경 2등급’을 판정하며 인정상이처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주요 우울장애’ 두 가지로만 표기했다. 그 판단 내용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은 생물학적, 기질적인 질환으로 두부 외상력 없이 발병하는 경우에는 공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이 제기된다”라면서도 “그러나 신청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 신청 상이의 발생 또는 악화가 군 직무 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의학적인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고 썼다.
보훈부 상이등급은 정도에 따라 1급에서 7급으로 나뉜다. 1급은 일상생활 전반에서 타인의 전적인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단계다. 7급은 비교적 경증이나 추가적 의료 조치와 생활지도가 권장되는 단계다. 이 급수 판정에 따라 △월 보상연금 규모 △의료비(전액 지원·본인부담 경감) △취업·승진·교육 가산점 등 지원 범위가 달라진다.
그동안 정신질환은 신체 상해에 비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시돼 왔다. 한국형 상이등급표는 통증·기능장애 중심으로 설계돼 극심한 불안·과각성 같은 증상을 점수화하기 어려웠다. 2023년 6월 ‘국가보훈 기본법’ 개정으로 정신계 상병 평가항목이 기존 3단계에서 5단계로 세분화됐지만, 실무에서는 여전히 ‘중증 PTSD=7급’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A씨는 그동안 입원 치료비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주간조선에 "건강한 군인이었던 저는 군에서 겪은 성폭력과 2차가해로 중증의 정신장애가 생겨 수차례의 자살시도, 정신병원 입퇴원으로 결국 현역부적합 판정 받아 군을 떠나게 되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월 1,000만원 정도의 전기치료와 마약성 치료를 병행했지만 차도는 없었고 길어지는 치료와 소송으로 금전적 부담은 커져만 갔다"며 "의료지원, 교육, 취업 등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 심사를 신청하여 최초로 정신계열 2급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적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온전히 증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같은 아픔을 가지신 분들이 저의 케이스를 통해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인정받고 늦지않게 치료받아 트라우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보장 받으셨으면 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PTSD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중증질환이다. 미국은 PTSD만으로도 장애등급 100%를 인정하고, 치료 후 기능이 회복되면 평가에 따라 등급을 낮춘다”며 “한국도 심각도에 따라 높은 등급을 부여하고 경과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종민 국가보훈사무소 대표 행정사는 “이번 사례는 ‘정신적 상처도 신체적 상해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에 실질적으로 응답한 첫걸음”이라며 “앞으로 유사 피해자들이 더 빨리, 덜 고통스럽게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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