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한병훈 천안중앙고 교사(오른쪽)와 윤윤구 한양대사대부고 교사가 국어영역 출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뉴스1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한병훈 천안중앙고 교사(오른쪽)와 윤윤구 한양대사대부고 교사가 국어영역 출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뉴스1

‘국어·수학·영어 등 입시에서 어떤 과목이 제일 힘들어요?’라는 질문을 하면 최근 나오는 답변은 국어도, 영어도, 수학도 아니다. “원서 영역이 제일 힘들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성적으로 어떤 대학에 원서를 써야 하는지가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는 크게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져 있고 수시는 6장의 원서 카드를, 정시는 3장의 원서 카드를 쓸 수 있다. 특히 6장을 쓸 수 있는 수시 영역은 다양한 원서 조합이 가능하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여러 정보를 취합하면서 신중히 접근을 하지만 때로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머지 엉뚱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지난 9월 12일 마감한 올해 수시 접수는 그러한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이번 원서 접수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는 입시를 치르는 2007년생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인원수는 많은데 소위 SKY(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라 불리는 상위권 학교들의 경쟁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전형별, 학과별 경쟁률은 오른 곳도 있고 내린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경쟁률이 감소하였다. 올해 수시 원서 접수에서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불안 심리와 사탐런 영향

첫 번째로 불안 심리를 들 수 있다. 필자가 현장에서 느낀 점은 2007년생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인원수가 많아졌기에 가고 싶은 대학의 작년 합격 커트라인보다 높은 점수를 보유하였다고 할지라도 지원을 꺼렸다는 점이다. 이런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불안감은 하향 지원을 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한편,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인원수가 많은 사실만큼이나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은 의대 증원 철회다. 의대 증원이 철회되었다는 사실은 의대 입학의 문이 좁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상위권 수험생들이 메디컬 계열을 쓰기보다는 다소 합격선이 낮은 SKY 대학의 일반 학과(메디컬 이외의 학과)를 써야 한다는 불안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이 지난해 같았으면 SKY 대학의 일반 학과를 지원할 수험생들을 하향 지원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는 상당수의 대학에서 이과 계열 학과라 할지라도 수시 합격의 최소 요건 기준인 수능 최저를 과학탐구 영역이 아니라 사회탐구로 응시하여 수능 최저를 맞추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꽤 많은 대학에서 이과 계열 학과라 할지라도 이과 수학 선택과목인 미적분 혹은 기하가 아니라 문과 수학 선택과목인 확률과 통계로 수능 최저를 맞추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이과 학생 중 수능 과목을 과학탐구 영역이 아니라 사회탐구를 선택하는 속칭 ‘사탐런(사회탐구로 도망치는 현상)’을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고,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기보다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속칭 ‘확통런’을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학교 지역균형 전형의 경우는 대부분의 이과 계열 학과에서 과학탐구 응시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상위권 학생 중 사탐런을 한 학생의 경우 서울대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연세대학교의 경우 이과 계열 학과는 수능 최저를 미적분이나 기하로 요구하고 있기에 확통런을 한 학생의 경우 연세대를 쓰기에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거기에다 의대를 포함하는 메디컬 계열의 학과들은 수능 최저로 수학은 미적분과 기하, 탐구과목은 과학탐구를 요구하고 있다. 내신이 뛰어나더라도 확통런이나 사탐런을 한 학생들은 메디컬 계열이나 상위권 학교를 쓰기 곤란해졌기에 이런 학생들의 대학 원서 접수도 하향 지원 흐름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는 어려워진 9월 모의고사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년에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 그리고 11월에 시행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렇게 세 번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특히나 9월 모의고사는 문제 출제기관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기관과 동일하고 시험 범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범위와 같기에 많은 학생들이 9월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수시 원서를 최종 결정한다.

 

어려웠던 9월 모평… 하향 지원 촉매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9월 모의고사를 가지고 정시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늠해 본 뒤 그 위로 수시를 쓴다거나 혹은 9월 모의고사를 가지고 내가 수시에서 어느 정도의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는지 가늠한다는 것이다.

이번 9월 모의고사는 난이도 면에서 상당히 까다로웠기에 많은 수험생들이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합격점수 커트라인이 낮은 학교일수록 낮은 수능 최저를 요구하고 있기에 하향 지원의 흐름이 또 한 번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어려워진 9월 모의고사로 인해 고3 학생들은 수능 최저를 과연 맞출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수능 최저의 기준이 다소 까다롭지 않은 대학으로의 지원, 즉 하향 지원의 흐름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위와 같이 인원수 증대, 사탐런과 확통런을 허용하는 현재의 제도 그리고 다소 까다로운 9월 모의고사라는 3박자가 모여 거대한 하향지원 물결을 만들어냈다.

 ‘원서를 잘 썼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6장의 원서 접수 중 1개 이상의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원서를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족하고 다닐 수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원서를 잘 썼다’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학생들은 1개 이상의 대학에 합격해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바로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대학에 합격할 때 학생들은 원서를 잘 썼다고 생각한다.

의대 증원 후 철회, 확통런 및 사탐런을 가능하게끔 하는 지금의 제도들이 과연 수험생들로 하여금 원서를 잘 쓰게끔 이끄는지 정말 의문이다.

의대 증원 후 철회를 하는 것과 같은 교육제도의 변경은 단순히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끝맺어지지 않는다. 입시와 관련한 수많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입시는 이처럼 하나가 변하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무언가가 크게 변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볼 수 있다. 입시라는 생태계를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제도들이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될 요소는 ‘불안감’이라는 심리를 잠재우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좋은 제도들이 나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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